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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셋풋볼

산시로의 챔피언 글쓴이. 바셋 마침 닐리리 팔리리 하던 시간에 녹화중계를 해주기에 정말 오랜만에 세리아 경기를 봤습니다. 정확히 언제 한 경기인지는 잘 모르겠는 밀라노 더비였지요. 경기 내용에는 별 감흥이 없었고, 그나마 인상에 박힌 건 인테르 팬들의 발로텔리를 향한 막가파식 인종차별 야유였습니다. 하여간 이 나라 국민들은 도무지 해답이 안 나옵니다. 씁쓸하더군요. 지금도, 심지어 자국 국민들 향해서도 저 따우로 구는 놈들에게 둘러싸여 당시 그 분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옵니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인테르와 아체의 공용 홈구장. 어느 날 잠실구장이 백인천 구장으로 명명되면 당연히 두산 팬들은 그냥 잠실이란 이름을 고수하겠지요. 그래서 AC밀란 쪽에선 그냥 ‘산시로’라고 부르고, 저도 단지 짧다는 이.. 더보기
50년대 헝가리 대표팀 (1부 셰베시 구스타프)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에서도 패전한 헝가리는 국토 대부분을 상실하고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며 깊은 패배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절망에 젖어있던 그 땅에 마법 같은 전력을 가지고 등장한 축구대표팀은 자국민들에게는 희망을, 전세계에게는 경악을 선물합니다. 이 글은 세계 축구사의 흐름을 틀어버리며 56승 9무 6패, 4년간 32경기 연속 무패의 기록을 남기곤 어느 날 한순간에 사라진 어러니처퍼트(황금팀)에 관한 7년간의 이야기입니다. 별다른 유흥거리가 없던 시절. 스포츠 경기는 영화와 더불어 최고의 관객동원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라디오 보급률이 급속히 늘고 있었지만 40년대 말까지도 이는 헝가리 전체 가구의 60%를 넘지 못했습니다. 여러 스포츠 종목 중 특히 월드컵 준우승 등 국제적 호성적과 양 대전 .. 더보기
바셋의 전격디스작전) 해발고도 신드롬 이 사이트 필진 중에 홍차도적(가명)이란 분이 계십니다. 축구에 관한 풍부한 식견으로 명망이 높으신 분이지요. 글의 성격상 존칭은 여기까지입니다. 홍차도적의 혹세무민을 온 몸으로 저지하고자 자중지란을 일으킨다는 비난을 감내하며 분연히 일어나 전격 디스에 들어갑니다. 홍차도적에게는 경기 분석이나 예상에서 플레이 외적 여러 상황을 감안하는 습성이 발견됩니다. 로또꾼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지요. 특히 경기장소의 ‘해발고도’를 비중있게 언급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 생각으론 해발 따윈 별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때그때 홍차도적에게 반론을 들이대지 못한 까닭이 단지 홍차도적이 이종격투에 능통하다는 이유였음에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그는 어제 있었던 월드.. 더보기
(바셋풋볼) 빽가의 차, 골프스부르크 ‘1박2일’에서 빽가가 28살 먹었다는 구형 차를 몰고 와 김종민을 데려갑니다. 저는 대번에 같이 TV를 보던 마눌님에게 저 차는 28살이 될 수 없다며 전문가적 혜안을 자랑하지요. 80년대에 만들어진 폭스바겐 골프는 3도어입니다. 그런데 빽가의 차는 뒷좌석에도 문이 있었지요? 그건 90년대 모델입니다. 공장서 일빠따로 빠진 제품도 28살이 될 수 없습니다. 여느 남자들과 달리 차에 큰 관심이 없는 제가 대번에 그 차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제가 태어나서 젤 처음 주행해본 차가 바로 TV에 출연한 그 놈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올린 뒤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80년대식 골프도 나중에 5도어를 출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운전했다는 것도 그것이고요. 마눌님께 잘난 척하려다 착오가 발생했으니 이점 .. 더보기
(바셋풋볼) 슈퍼스타 박종우 팀은 졌지만 박종우가 리그 복귀전을 무사히 치러주었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같았으면 경기고 나발이고 집에 드러누워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역시나 언론은 경남-부산 경기를 과감히 쌩까주시네요. 부산의 박종우가 아닌 대표선수이나 메달을 받지 못한 박종우에게만 집중되는 관심이 안타깝습니다. 새옹지마라고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해외에 진출하지도 않은 축구선수가 이 정도 전국구 인지도를 얻기란 불가능합니다. 천하의 박종우가 ‘기성용의 파트너’로 기억되느니 차라리 ‘독도 수호의 아이콘’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는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살인범이 잡혀도 어찌 알았는지 앞 다투어 그 인간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 놓더만... 축구선수 박종우. 독도로 관심을 .. 더보기
승부차기에 관한 잡설 글쓴이 바셋. 잉글랜드-이탈리아 경기. 전반전 20분이나 봤을까 TV 틀어놓은 채 뻗어버렸습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스페인-독일 양강 외엔 그놈이 그놈인 이번 유로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설상가상 이탈리아가 자꾸 올라가니까 더 짜증이 나나 봅니다. 어쨌건 이즈음 되면 잉글랜드 입장에선 승부차기 제도를 어케 좀 파버리고 싶을 겁니다. 역대 전적 1승 7패. 축구 실력을 떠나 대부분 나라들이 승률 5할선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확실히 이 나라는 뭐가 잘못되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승부차기 승률은 5할4푼입니다. 승부차기 제도의 기원은 확실치가 않습니다. 이스라엘하고 독일이 서로 원조라 주장하는데, 피파가 독일 룰을 그대로 가져왔기에 독일이 본가라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 더보기
축구와 국가(國歌) 글쓴이 바셋. 잉글랜드 올림픽 육상 대표팀 선수들에게 국가國歌 교육이 한창이라는 재밌는 기사를 봅니다. 귀화파가 대부분이나 명색이 개최국 선수인데 국가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감독마저 가사를 끝까지 몰랐다고 합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아마 평생 가장 많이 불러본 노래 중 하나가 애국가일 터입니다. 제 경우 캔의 ‘내 생에 봄날’에 이어 2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근데 1, 2차 대전 이후 국가주의에 학을 띈 유럽의 많은 나라 사람들은 국가를 가르치지도, 배우긴 했지만 부를 기회가 별로 없어 모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하여 일명 대리전쟁, 국가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축구에선 국가 관련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발생합니다. 5월 말 벌인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세르비아의 감독.. 더보기
정대세가 대남공작원이면, 귄리세는 대남기쁨조? 글쓴이 바셋. 변희재가 힐링캠프에 출연한 정대세를 대남선동 공작원이라고 했답니다. 겪으면 겪을수록 심오한 친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정대세가 흘리는 눈물에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으면 저럴까 싶어 저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근데 당시 변희재는 거기다 대고 매우 특이한 반응을 보입니다. 정대세는 북한인권 현실을 세계에 알릴 생각은커녕 북한 국대가 된데 감사의 눈물을 뿌린답니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북한 체제에 충성의 눈물을 흘렸고, 그걸 한국 언론이 띄웠답니다. 정대세가 무하마드 알리와 너무나 비교된다는 해괴한 예를 들기도 했지요. 근데 변희재 경우 자신이 그리 맹비난하던 빨갱이 대통령 정권 시절 한국 스포츠 선수들의 처사만큼은 용서를 하나 봅니다... 더보기
조선의 송종국 글쓴이: 바셋 아내가 큰 아이만 데리고 교회 체육대회에 가버려 종일 집에서 둘째 녀석 시중드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얜 지 언니 이맘때랑 다르게 대체 왜 이리 극성맞은지...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덕분에 전북-수원 경기 TV는 틀어놨으나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계라도 열심히 들어보려 노력했는데 가만 듣다 보니 해설자가 선수 출신이었습니다. 일전에 기자 출신 누군가가 하기에 당연히 그 사람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헌데 알고 보니 해설자가 댄싱머신 송종국입디다. ‘얘가 이렇게 말을 잘했나...!’ 문득 세상사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 월드컵 개막 3개월 전까지 조선일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대표팀을 까댔습니다. 허긴 그 시절 안 그랬던 이가 몇이나 있겠냐만서도 그 신문사가 특히 심했.. 더보기
한국은 러시아의 미래다. 글쓴이: 바셋도령 작년 1월 그러니까 아직 박지성이 캡틴이었고, 조광래가 대표팀을 이끌며 아름다운 축구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던 아시안컵 개막 직전. 개인 블로그에 내셔널지오그래픽급 과학논문을 하나 올린 기억이 있습니다. 요는 이랬습니다. 아시아의 한국과 유럽의 러시아는 묘하게도 대륙컵에서 비슷한 역사를 써왔습니다. 1960년 이후 대회 우승과 연을 끊고 살아온 두 나라... 준우승만 세 번을 차지하는 모습도 똑같습니다. 근데 이게 다가 아니죠. 먼저 70년대까지의 상황을 봅니다. 사실상 두 나라 성적이 똑같습니다. 1960 1964 1968 1972 1976 한국 우승 3위 예선탈락 준우승 예선탈락 소련 우승 준우승 예선탈락 준우승 예선탈락 이때까진 아시안컵이 유럽컵 보다 먼저 열렸습니다.(60년 제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