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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셋풋볼

(바셋풋볼) 슈퍼스타 박종우

 

팀은 졌지만 박종우가 리그 복귀전을 무사히 치러주었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같았으면 경기고 나발이고 집에 드러누워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역시나 언론은 경남-부산 경기를 과감히 쌩까주시네요. 부산의 박종우가 아닌 대표선수이나 메달을 받지 못한 박종우에게만 집중되는 관심이 안타깝습니다.


새옹지마라고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해외에 진출하지도 않은 축구선수가 이 정도 전국구 인지도를 얻기란 불가능합니다. 천하의 박종우가 ‘기성용의 파트너’로 기억되느니 차라리 ‘독도 수호의 아이콘’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는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살인범이 잡혀도 어찌 알았는지 앞 다투어 그 인간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 놓더만...




축구선수 박종우. 독도로 관심을 끌기 이전부터 축구팬들에게 만큼은 초대박 스타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던 선수지요.


장훈고 시절부터 유스대표팀에 발탁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장훈고에는 임상협, 유지훈, 강대호, 김태준, 윤동민이 같이 뛰고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이 선수들이 나중에 다 부산에 집결해 다른 팀 질식시키기에 동참합니다.


이후 박종우는 프로 대신 대학에 선택합니다. 2008년 FA컵에서 김호의 대전이 연세대에게 깨지며 개망신의 역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연대의 중원을 이끌던 친구가 바로 박종우로 무적 연대 멤버들은 U20 대표팀 특혜감독이 된 홍명보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때, 그러니까 2009년 그때만 해도 축구판에선 동명의 다른 박종우가 훨씬 유명했습니다. 전남을 거쳐 경남 돌풍의 역사를 만든 그 박종우 말입지요. 그런데 2009년 조광래가 일명 ‘조광래 유치원’을 경남에 개설하면서 노장 박종우는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대신 리그에 새로운 박종우가 등장하게 되니, 드래프트에서 12번째 지명권을 얻은 황선홍 감독이 소장 박종우를 덥석 물어버립니다. 그 때 부산은 추첨 순서를 정하는 뽑기에서 1번을 뽑고, 정작 지명권은 12번을 뽑는 재섭는 일을 맞이했었습니다. 지명권마저 1번을 가져갔다면 아마도 박종우가 아니라 홍대의 홍정호를 낚았겠지요.


그렇다고 박종우가 홍정호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단 평가를 받던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박종우는 발 수술을 한 상태로 실전투입 시기가 미스테리한 상태였음에도 부산을 그를 택합니다.


데뷔 첫해의 실적은 미비했습니다. 겨우 재활을 마치자 피로골절이 찾아와 시즌 대부분을 주욱 쉬어주십니다. 그렇게 문제의 2011년이 찾아왔지요.


여자축구계의 히딩크 안익수 신임감독은 부산의 젊은 남자들을 기계부품으로 재가공합니다.


헌데 그 부품들이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기 시작하니 영등포 스따일 박종우 오빠를 필두로 임상협, 한지호, 그리고 런던의 풍운아 이범영이  ‘부산 아이돌파크’를 결성합니다. 똑똑한 부산 프론트는 이 젊은 선수들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비주얼 마케팅에 전념합니다.


그러나 암만 잘생겨도 성적이 안 나오면 이용대가 김재범한테 밀리는 법입니다. 천만다행 오랜 침체를 겪던 부산이 드디어 폭발합니다. 부산 축구 르네상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외모로나, 기량으로나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그룹 내에서 수염을 담당하던 박종우였지요.


집안이 넉넉지 못했던 우리 독도수호신은 학창시절을 줄곧 학교 숙소에서 보내며 남보다 많은 시간을 운동장에서 보냅니다. 덕분에 체력과 근성은 대단한데 좀 투박한 점이 단점이었지요. 안익수의 부품 축구는 그런 박종우의 단점을 훌륭히 커버해줄 수 있었습니다.


선수층이 백지장이던 부산은 공수능력을 겸비한 미드필더 박종우를 자주 전문 수비요원으로 활용했고, 그의 다재다능함은 올대팀으로 승진은 했으나 수비가 찌질하다 허구헌날 욕을 바가지고 먹던 홍명보의 구미를 당깁니다.


때를 같이해 조광래의 A팀과 홍명보의 올대가 선수차출을 두고 슬슬 티격태격하기 시작합니다. 광래 형님은 구자철을 무척 애용하셨습니다. 하여 당시 올대 전술의 중추는 윤빛가람 한 사람으로 굳어집니다. 올대팀에게는 빛가람이 마저 A팀에 불려갔을 때 중원을 지휘할 선수 또는 빛가람이와 세트가 돼서 이 친구의 저주받은 수비능력을 보완해줄 선수가 절실했습니다.


마치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준비된 선수가 바로 박종우였습니다.


10월 7일. 어딘지 좀 모자라 보이던 올대팀이 우즈벡을 5-1로 박살내며 대반전을 개시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가람, 홍철, 홍정호, 김보경 등 주력을 모조리 하필 같은 날 경기를 한 조광래호에게 다 빼준 홍명보는 이날 새얼굴들을 대거 기용합니다.


얼랄라! 결과가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박종우는 골까지 넣으며 맹활약하여 윤빛가람이란 애를 까먹게 만듭니다. 이날 승리의 주역들은 남은 올림픽 예선에서 대거 중용되었고, 특히 새로 결성된 박종우-한국영 조합은 올림픽 본선진출에 결정적 공훈을 하게 됩니다.


올대와 부산을 오가며 박종우의 플레이는 세련미를 더해갑니다. 결국 부산이 가을축구에 참가하는 경사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수원과의 플레이오프 날에 맞춰 올대팀이 중동 원정 대비 합숙훈련에 들어가 주십니다. 박종우는 이제 올대의 심장이기도 했습니다. 부산이 암만 지럴을 해도 징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안익수 감독이 폭삭 늙어버립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얼마 전 수원 스테보가 아챔에서 정의의 주먹을 휘두르다 출장정지 당했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소속팀과 마찬가지로 박종우에게도 최대 위기가 찾아옵니다. 카타르에간 박종우는 무리한 태클로 PK를 헌납합니다. 김현성이 천금같은 동점골이 아니었음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박종우 날아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부산은 예상대로 수원한테 져서 날아갑니다.


홍명호의 아이들은 이어진 사우디 전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비기고 맙니다. 그렇지만 이제 올대를 향해 수비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전멸합니다.


그렇게 2012년이 찾아왔습니다. 올림픽 진출권도 받았고, 태국 왕이 하사하신 술잔도 받아왔습니다. 남은 일은 런던에 갈 달랑 18명을 솎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는 박종우 입장에선 걱정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본선 엔트리에서 박종우가 빠질 것이라 예상하는 미친놈 역시 전멸한 시점이었습니다. 선택 1순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반면 윤빛가람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빛가람이 리그에서 버벅대는 동안 박종우는 이종원과 콤비를 이뤄 승승장구합니다. 부산의 수비축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박종우가 엄청나게 잘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세네갈과 벌어진 올림픽 최종평가전. 드디어 선보인 박종우-기성용 따블 볼란치 조합이 그 위력을 과시합니다. 세네갈 공격은 무력화되었고 박종우는 팀내에서 K리그를 대표하는 아이콘 취급을 받기 시작합니다.


같은 날. 박종우, 이범용에 이어 수비의 중추 김창수까지 와일드카드로 올대에 내준 부산은 서울에게 떡실신 패배를 당합니다. 잘나가던 부산의 몰락은 올림픽 신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됩니다. 설상가상 차출되었던 셋 모두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옵니다. 부산은 그냥 야구나 해야 된다는 말이 맞나봅니다.


모든 올림픽 예선전에서 그랬듯이 본선에서 역시 명불허전 박종우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온갖 관심은 해외파들에게 집중되었고 또 그 친구들 역시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었으나 그들에 비해 큰 경기 경험이 일천하고, 한국영의 부상 공백을 부담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박종우는 분명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천하의 영국 허리를 질식시켜 버려 제대로 슛조차 못하게 만든 8강전은 한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그 자체였습니다.


인터뷰를 보니 홍명보 감독이 브라질 전에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하던데... 뻥치지 말라구 하십시오. 박종우를 아예 빼고 나왔으면서 뭔 전력을 다했다는 말씀인지...


올림픽 끝나고 잘하면 부산이 이적료 대박 터뜨리지 않을까 기대해봤습니다. 온 언론들이 해외 명문구단을 들먹이며 박종우 이적설을 설레발치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근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네요. 차라리 다행일까요? 그나저나 이 친구 일본 진출할 일은 영원히 없을 듯싶습니다.


저는 박종우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솔직히 부산 싫어합니다.) 다만 독도 사건에 가려 그간 박종우가 이룩한 업적들이 조명 받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워 적어봤습니다.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도 물론 대단했지만 이 친구들은 런던의 간판이 될 자격이 부족합니다.


박종우는 3년여의 긴 여정을 담은 이번 올대팀 정체성과 성과의 배경를 이해시킬 수 있는 핵심 아이콘입니다. 훗날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남긴 기록들을 토대로 박종우를 런던 신화의 가십 혹은 불운의 상징 정도로 이해하는 불상사가 있을까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독도는 우리 땅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