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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셋풋볼

축구와 국가(國歌)

글쓴이 바셋.

 

 

잉글랜드 올림픽 육상 대표팀 선수들에게 국가國歌 교육이 한창이라는 재밌는 기사를 봅니다. 귀화파가 대부분이나 명색이 개최국 선수인데 국가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감독마저 가사를 끝까지 몰랐다고 합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아마 평생 가장 많이 불러본 노래 중 하나가 애국가일 터입니다. 제 경우 캔의 내 생에 봄날에 이어 2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근데 1, 2차 대전 이후 국가주의에 학을 띈 유럽의 많은 나라 사람들은 국가를 가르치지도, 배우긴 했지만 부를 기회가 별로 없어 모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하여 일명 대리전쟁, 국가주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축구에선 국가 관련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발생합니다.

 

 

5월 말 벌인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세르비아의 감독은 국가를 합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예 아뎀 리아이치를 제명합니다.

 

 

세르비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체코슬로바키아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쓰겠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한 나라이던 시절, 국가 연주가 울리면 관중석이 개판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민족이 각자 원래 자기 나라 노래를 악을 쓰고 불러 재꼈기 때문입니다.

 

 

체와 슬로박의 관계에 비해 5억 배 험악했던 구 유고연방의 각 민족들 경우 세르비아인들이 만든 국가를 같이 부를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휘파람 불고, 유행가 부르고 난리가 납니다. 하여 지금까지도 그쪽 사람들은 남에 국가연주 때 가만 있지 못하고 오도방정을 떠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에파로부터 징계까지 받았었지요.

 

 

이제 더 이상 유고연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르비아 국가가 나오면 다들 세르비아 국가를 맘 편히 따라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새파란 좌식이 조용히 샷다마우스하고 있으니 세르비아의 감독이자 한 때 프리킥 제왕이며 애국 전사였던 시사나 미하일로비치가 화가 난 겁니다.

 

 

노래 안 했다고 짤린 리아이치는 세르비아에 감정있는 소수 민족이나 무슬림이 아닙니다. 여러 발언을 종합해볼때 자신의 동족 세르비아인들이 국가 혹은 민족이란 이름을 내걸고 자행한 범죄(덕분에 덴마크가 유로를 먹습니다.)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반면 왕년 프리킥 대왕께서는 애국이란 미명으로 그 범죄에 열렬히 동참한 전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까지도 전혀 뉘우칠 의사가 없지요.

 

 

편협한 민족주의라는 말을 평소 재밌게 여겨왔습니다. 세상에 편협하지 않은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없습니다. 적의 존재가 필수이며 이 때문에 맹세니, 국가니 나아가 국사 교육까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비슷한 예로 스페인을 드는 분들이 계십니다. 대표팀 멤버 중 스페인의 피지배자인 선수들이 (대표 대부분 입죠) 일부러 스페인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카탈루냐, 바스크를 떠나 적통 성골 스페인 사람들 역시 지네 국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걔넨 공식적으로 국가의 가사가 없습니다.

 

원래 왕실에서 연주곡으로 사용되던 국가에 프랑코 총독시절 가사를 붙여놓는데 다분히 파쇼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없앴다가 맨날 뻘쭘히있기 뮛하니 다시 가사를 붙여놓긴 했는데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유로 경기 때 유심히 보심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입 모양이 다들 제각각 이거나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러시아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소련이 분해되고 기존 국가가 폐기되자 축구장의 선수들은 벙어리가 됩니다. 관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뒤 새로운 국가를 하나 만들어 주는데 문제는 그게 성시경 발라드인 겁니다.

 

 

당최 운동경기장에서 부를 맛이 안 났습니다. 하여 축구팀 서포터단들이 연합해 푸틴에게 청원을 넣습니다. 그렇게 구소련 국가 멜로디에 가사만 바뀐 지금의 국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사연이 기구해서 인지 유로 가만보면 러시아 사람들이 젤 신나게 부릅니다. 하여간 참 시끄러운 열정적인 민족입니다.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도 선수나 관중이나 국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특별히 노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안 따라 부르면 경기에 진다는 이상한 속설이 있습니다. 지들은 이러면서 이피엘 관중들은 합창단이냐고 되게 비웃지요.

 

 

한편 알면서도 안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네덜란드와 스페인 매치업 시 발생됩니다.

 

 

네덜란드 국가 가사 중에는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질 시기인 16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 왕국 산하의 공국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에 와선 좀 걸쩍지근합니다.

 

 

독일이 가사 1, 2절을 아예 파버린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1절에는 유럽 전체를 다 쳐먹겠다는 나치의 망령이 떠오르는 구절이 있고, 2절에는 여성비하적 내용이 있습니다. 저번 유로에선 개최국 스위스 방송이 히틀러의 18, 1절을 그냥 틀어버리는 (고의로 의심되는)방송사고를 내 독일인들의 빈정을 상하게 합니다.

 

 

문제의 스위스도 쿤 감독 주도로 지난 유로 개막 전 선수들에게 국가를 습득시켜 화제를 낳았었지요. 여담입니다만 제가 아는 모든 스위스인에겐 아예 조국이란 개념이 없어 보였습니다.

 

 

개념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테우스가 헝가리에서 감독하던 시절 하도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자 축협 사람이 국가를 같이 따라 불러보란 건의를 합니다. 그랬더니 이 인간이 가사를 독어로 부릅니다.(국가 가사가 유명한 詩인 관계로 각국어 번역본이 있음) 마테우스가 헝가리 대표팀에서 장수했다면 아마 그게 더 이상했을 겁니다.

 

 

한국과 일본도 국가를 가지고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1979 한일 정기전. 차범근 유럽진출 공백을 절호에 기회로 여기고 그간의 설움을 씻을 작정을 한 일본이 1차전 도쿄 경기에서 지네 국가를 먼저 연주하는 도발을 해옵니다. 국내 여론은 부글부글. 그러나 동방예의짱 나라 한국은 리턴 매치에서 도리에 맞게 일본 국가를 먼저 틀어줬고 대신 경기를 4-1로 가져갑니다. 성화 해트트릭 작렬.

 

 

경기 전, 성스런 국가연주 의식 그리고 그 의식을 방해하는 자들에 대한 가차없는 징계를 보면 피파는 여전히 축구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하긴 그거 없이는 장사가 안 되겠지요.

 

사진 출처 : 조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