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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셋풋볼

조선의 송종국

글쓴이: 바셋

 

아내가 큰 아이만 데리고 교회 체육대회에 가버려 종일 집에서 둘째 녀석 시중드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얜 지 언니 이맘때랑 다르게 대체 왜 이리 극성맞은지...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덕분에 전북-수원 경기 TV는 틀어놨으나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계라도 열심히 들어보려 노력했는데 가만 듣다 보니 해설자가 선수 출신이었습니다. 일전에 기자 출신 누군가가 하기에 당연히 그 사람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헌데 알고 보니 해설자가 댄싱머신 송종국입디다. ‘얘가 이렇게 말을 잘했나...!’

 

문득 세상사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 월드컵 개막 3개월 전까지 조선일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대표팀을 까댔습니다. 허긴 그 시절 안 그랬던 이가 몇이나 있겠냐만서도 그 신문사가 특히 심했던 건 아마 조선일보 본인도 인정할 겁니다. 여자문제 등 별 치사한 트집을 다 잡았었지요. 세월이 흘러 조선 방송국의 축구 해설을 ‘히딩크의 황태자’가 맡았습니다. 김구라가 이효리를 게스트로 맞은 오락프로 느낌입니다.

 

저는 2002 월드컵 3대 공신을 꼽으라면 정몽준, 히딩크 그리고 송종국을 듭니다.(특별상:모레노) 송종국은 히딩크 한국호의 정체성이 탄생되는 기간의 상징 그 자체였던 선수였습니다. 그 기간 조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히딩크의 지나치게 긴 실험 기간을 비난의 메인 테마로 삼았었습니다.

대부분 히딩크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연대생 송종국 역시 허정무에 의해 픽업됩니다. 박지성 뽑았다고 별 소리를 다 들은 그 2000 올대팀에 말이죠. 박지성과 달리 송종국의 발탁은 논란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고교시절부터 전국구였고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걸어가던 그였으니까요. 청대-올대-국대 쭉쭉 나가주십니다.

 

그렇지만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달고 다닌 무릎 부상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송종국을 조연으로 밀어냅니다. 그렇게 2001년 부산에 1번 지명으로 입단했고 드디어 운명적인 히딩크와의 만남이 이뤄집니다. 근데 베어벡이 뻑하면 주장하듯 지가 매의 눈으로 리그를 관찰해 얻어낸 전리품은 아니었습니다. 송종국의 히딩크호 데뷔는 리그가 시작하기도 전인 바로 그해 2월에 있었습니다.

 

벨기에에서 맹활약하다 지친 설기현을 배려해 땜빵으로 두바이컵 유에이전에 투입된 쿠키는 특유의 극성맞은 박스투박스 플레이로 멀티플레이어에 환장한 히딩크를 매혹시킵니다. 이때부터 월드컵 본선까지 주욱 불멸의 주전되시겠습니다.

 

그러나 출전 여부와 별개로 월드컵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까지 대체 이 친구의 정확한 포지션이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골키퍼 빼고 다합니다. 주종목인 수미, 윙백은 물론 센터백, 플메, 셰도 스트라이커 등등 축구에 존재하는 포지션은 다 돌아다닙니다.

 

결국 중앙수비로 굳어지나 싶더니 골드컵을 통해 김태영, 최진철 라인이 합격점을 얻자 다시 앞으로 기어 나옵니다.(심재원은 짤리고) 중앙 미들이다 확신될 무렵엔 다시 원래 자리인 측면으로 가더군요. 송종국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사이 조선을 비롯한 언론은 제발 좀 결정을 내리라며 히딩크를 오징어 다루듯 물어뜯습니다.

 

물론 언론(과 박종환 외 약 3천5백만 한국인)이 히딩크가 송종국 한 명을 제대로 활용 못해 화가 나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송종국의 미친 보직이동이 바로 감독이 모든 포지션의 다른 여러 주전 후보들을 장악하고, 배치하며 대표팀의 색깔을 정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로, 이는 송종국이란 성실하고 능력되는 캐릭터가 없었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댄싱스타 송종국씨. 히딩크가 열심히 까이던 시절에도 유독 언론은 그의 메인 끄나풀에게는 호의적이었습니다. 당연하죠. 흠잡을 곳이 없으니. 그래서 청바지 모델도 하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월드컵 끝나고는 나쁜남자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부합한 김남일한테 좀 밀리는 듯 보였지만 암튼 대단했습니다.(주말에 종일 지랄맞은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착한남자의 대명사인 저는 김보민으로 대표되는 대한의 여성분들이 좀 이해가 안 갑니다.) 

 

잠깐 삼천포로 방향을 틀어 혹시 그거 기억나십니까? 2류 코미디언 유재석의 오늘을 만들어준 서세원 쇼가 박살나는데 송종국이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데... 기억 안 나심 자세한 내용은 알아서들 찾아보시고...

 

해외진출 실패와 이런저런 구설수로 그때의 명예와 인기를 찾지 못하고 떠나 안타까웠는데 이참에 해설자로 대성하길 바랍니다. 소질 있어 보이더군요. 근데 춤은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