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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셋풋볼

좌측 전두엽

                                                                                                                   글쓴이 : 바셋

인생의 반을 외국에서 보낸 저에겐 미스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이상하게 제 외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지요. 환장하겠는 건 작문, 독해는 오히려 우수한 편이라는 모순이었습니다. 어휘는 수려해도 이상하게 발음이 구립니다.

이후 생물학적 통찰을 통해 제 문제점을 알아냅니다. 경험에 비추어 노래를 잘하는 아이가 외국어 구사 능력이 좋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다녔는데 훗날 이 개똥같은 소리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의 왼쪽 측두엽은 일차적으로 청각 정보가 전달되는 기관입니다. 외국어를 유독 잘 습득하는 사람들이 이 부분이 발달되어 있다더군요. 음악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천부적 능력이 있어야 그 소리를 제대로 정리해 표현해내겠지요.

“포항의 핫이슈 지쿠, 7개 국어 하는 엘리트” 란 기사를 보고 생각나 적어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언어습득을 무슨 엄청난 학문연마와 동일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지쿠의 고향 루마니아만 가 봐도 7개 국어를 한다 해서 ‘엘리트’로 칭송해주진 않습니다. 외국을 돌아다니는 운동선수나 비즈니스맨이라면 이를 당연한 결과라 여기지요. 제 루마니아 친구는 모국어, 헝가리어, 독어, 영어, 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는데 대학도 못가고 집에서 닭 키웁디다.

지쿠의 7개 국어는 그가 축구를 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익혀야 했던 도구에 불과하고, 제 친구 가보르도 해당국에 닭을 팔아먹기 위해 그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외국어 습득이 축구나 양계 보다 우위의 학문(?)일 수 없다는 주장입지요. 

열폭 쩔어 외국어에 능한 분들을 폄하할 생각에 하는 말은 아닙니다.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환경적 특성상 좌측 전두엽만 대따 커 노력이라곤 전혀 안한 사람이 외국어를 잘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영어를 잘 하면 유식하다 치부하는 이상한 제 조국에서 대놓고 무식의 대명사로 이용되는 운동선수들을 유럽인들은 외국어의 달인 직업군으로 여기기도 합니다.(우리도 곧 이런 시대가 온다고 확신합니다.) 언젠가 네덜란드 한 대학에서 국대 축구선수들의 언어 습득력이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가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유독 한 명. 반 봄멜의 좌측 전두엽이 유난히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지요. 좌측 전두엽은 더러분 성깔과도 연관이 있나 봅니다.

실제 봄멜의 외국어, 특히 스페인어 구사 능력은 칭송의 대상이었습니다. 보통 축구선수가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봐야 간단한 회화나 축구 관련 이야기 정도를 다소 남성스러운(두서없고, 쌍스러운) 방법으로 표현하는 정도인데 봄멜의 스페인어는 굉장한 수준이라 합니다. 기본적으로 모국어도 신문선급 달변입니다.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봄멜은 먼저 가까운 수녀원을 찾아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찾아간 놈이나, 받아준 시스터스님들이나 별나긴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봄멜의 스페인어가 엘레강스해질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선수는 외국어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3대 요소. 대형 전두엽, 노력, 뻔뻔스러움을 다 갖춘 셈입니다. 뻔뻔하긴 오질 나게 뻔뻔한데 전두엽이 없는 대표 주자를 들라면 이탈리아의 트라파토니 감독을 꼽습니다.... 동족인 미수다 크리스티나도 좀 그런 거 같습니다.

기사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지쿠는 언어를 비롯, 해외 적응력이 뛰어 난가 봅니다. 허나 오늘 아챔 분요드코르전 경기를 보니 지쿠가 부산 정도 잡자고 데려온 선수가 아닌 이상 포항에 오래 머무르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황선홍 감독은 ‘엘리트’ 지쿠를 전방 공격수로 계속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원은 비고, 공격은 조잡해졌습니다. 좌측 전두엽 손상으로 실어증을 얻은 사람처럼 우울한 경기들의 연속입니다.

그나저나 우리 주영 씨는 인제 영어 술술 잘 하나... 아님 불어라도...

사진출처. click sport    (한때 차세대 에이스였고, 스캔들 메이커였던 지쿠의 한국 근황은 루마니아에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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