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셋풋볼

'죽음의 조'

                                                                                                             글쓴이: 바셋

앞에 홍차도둑님의 글 을 보다 재밌는 점 하나를 깨닫습니다.

살면서 총 일곱 개의 언어를 접해봤습니다.(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서로 별로 연관없는 이 일곱 개 언어 모두에서 강팀들이 밀집한 조를 ‘죽음의 조’라 표현합니다. 흔히 외국어를 공부할 때 관용구는 통째로 외우라 합니다. 관용표현은 언어구사 집단의 문화, 생활 등 배경에 기대 탄생합니다. 하여 직역을 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곤 하지요. 영어에서 ‘빅 마우스’는 수다쟁이를 말하지만 저에겐 아구찜이 먼저 연상됩니다.

많은 언어에서 특정 관용구가 똑같이 사용된다면 이 말은 ‘위 아 더 월드’ 시대가 도래한 비교적 근래에 탄생했을 확률이 높고, 누군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조’란 표현은 누가 언제 처음 사용했을까요? 험난한 조, 절망의 조, 공포의 조, 우라질 조 등의 표현을 놔두고 왜 하필 죽음을....

때는 1986년 월드컵. 서독, 덴마크, 우루과이, 스코틀랜드가 한 조에 몰리자 우루과이 감독 오마르 보라스는 기자들에게 여기가 ‘Grupo de la Muerte’ 즉 ‘죽음의 조’라는 말을 했고 이때부터 세계의 기자들에겐 빡씨다 싶음 바로 죽음과 연관하는 버릇이 생깁니다.

보통 조별리그 대진 결과가 나오면 다 지들 조가 죽음이라고 엄살을 떱니다. 특히 한국이 심하지요. 까놓고 한국은 월드컵 본선, 예선 안 가리고 대진운이 지독하게 좋은 나라였습니다. 강한 두 넘이 묶여도 보상 카드가 꼭 하나씩은 따라와 줍니다. 결정적으로 한국이 속해있다는 점만으로 그 조는 죽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이 자기 상대들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과 죽음을 구분한다면 반대로 죽음이 아닌 조가 없고요.

언제나 그래왔듯 1986년 역시 대부분의 조가 ‘죽음의 조’였습니다. 헌데 우루과이가 속한 5조만 유일하게 이른바 축구 변방 대륙 출신 나라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조3위면 16강 진출이 무난했던 시기라 1번 시드 보다 4번 시드의 질이 훠얼씬 중요했습니다. 한놈만 제대로 족치면 만고땡이던 시절이었지요. 실제 이 대회에서도 모로코만이 돌풍을 일으켰지 그 외 나머지 모든 조의 꼴찌 임무는 한국을 포함한 변방국들이 담당합니다.

모두가 강자였다 볼 순 없으나 절대 약자가 없었기에 죽음을 운운하던 우루과이는 자중지란 속에 스코틀랜드로부터 1-6 개패를 당하고도 승점 2점만으로 16강에 안착해 죽다 살아납니다. 거기까지가 한계였지요. 16강에서 마라도나와 아이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선입견이자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고, 어느 언어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스페인어 문학에서는 죽음이 키워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투우' 때문에 생긴 선입견인가 봅니다.) 스페인 제국 패망의 시기, 그러나 그 문학을 만방에 알린 기상주의 시절 그들은 마치 우리네 사자성어같이 간결한 관용적 표현이 즐겨 사용합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죽음의 어쩌구 저쩌구’하는 말이 혹시 그네들이 과거부터 일반적으로 쓰던 관용구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문득 조추첨하면 떠오르는 관용구 하나가 생각납니다. ‘피를 말리다.’

'바셋풋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직 머저르의 슬픈 그림자, 데아크 페렌츠  (2) 2012.03.26
좌측 전두엽  (7) 2012.03.21
우리가 생각하는 돈질이 아니다  (9) 2012.03.08
최재형 PD님께.  (6) 2012.03.01
무솔리니 블랙을 아시나요?  (8) 201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