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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2012 한국축구 10대 뉴스 - (마지막)



 

드디어 2012년 한국축구의 기억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마지막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왜 홍차도둑은 한달이 넘게 끙끙대었을까요?
결과는 화려하지만 이에 따른 파생되야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 이야기의 마지막 급의 일이 이제 끝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네 다 아실만한 마지막 1위는 바로, 런던 올림픽의 축구 동메달입니다.


[올림픽 동메달을 딴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올림픽 최초의 메달리스트들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성적이기 때문에 1위를 꼽은 것이 아니냐?

는 것이 아닙니다.
올림픽 이라는 무대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1위로 꼽은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여러 부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몇몇 괄목할만한 성적을 낸 적이 있습니다.
메이저 국제대회 최초의 우승으로 꼽히는 유니버시아드 우승부터 (유니버시아드를 메이저 국제대회로 보느냐 아니냐의 시각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축구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시점에서는 연금점수 및 병역특혜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기량에 올랐으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재참가한 선수들도 꽤 있던 것이 1980년대까지의 대한민국 스포츠의 시점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당당히 유니버시아드 대회도 세계적인 대회로 한국에서는 분류가 되던 때입니다) 시작해서 1986년의 월드컵 진출, 2002 이전까지 최고의 성적으로 꼽힌 1994 월드컵팀의 근간은 그야말로 미드필드들의 분투와 분전이 그 밑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언론에 중요하게 보도된 부분은 무척이나 드뭅니다.



[이번 올림픽 동메달을 지휘한 홍명보 감독, 그러나 그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우승을 못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한을 풀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사진은 연합뉴스에서 가져왔습니다.]


언제나 빛을 받는 것은 공격진이었고, 그 다음이 수비진의 분투였습니다. 대패의 경우에나 미드필드들을 다루었습니다. 미들부터 막지 못해 진 것이라는 '분석'기사들만 사후 약방문으로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런 시각이 점점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미들의 중요성과 미드필더들이 스타급으로 다루어진 것은 이번이 올림픽이 처음이다시피 합니다.
골을 넣지 않으면 다뤄주지 않던가 골을 먹는 과정에서 처절하게 수비를 막아낸 선수가 아니면 다뤄주지도 않던 언론의 가히 대변혁입니다.
이번 올림픽 대표 수장인 홍명보의 경우 선수시절 1990 월드컵에서의 마지막 골 먹는 순간에 열심히 막아내던 것, 그리고 중거리 슛 능력으로 골을 넣는 것이 아니면 이렇게 뜨지 않았을거라 할 정도로 수비력 좋은 선수들은 언론에서 저평가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외면 당했습니다.

대한민국 미드필더의 최고 수난의 기사는 아무래도 1990년 월드컵의 벨기에전에서 나온 말일 겁니다.
"한국 벨기에에게 70번이나 패스를 뺏겨" 라는 기사를 검색할 수 있을 겁니다.
가히 이 경기는 다시 보더라도...완전히 경기 자체가 벨기에에게 '놀림당한' 경기였습니다.
이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반대 기사가 나오게끔 한 게 이번 올림픽 대표팀이었습니다.
1990년 한국대표팀이 '세계의 벽'을 느끼게 한 중원에서의 유연한 압박과 흐름을 틀어막는 수비, 그리고 어느샌가 그 선수들이 공격 여기저기에서 박혀있는 모습에서 '멘붕' 당하고 경기를 지던 모습을 벗어내고, 되려 우리가 그것을 통해 상대를 괴롭히는 모습을 90분 내내 보여주었습니다.

22년전에 우리가 당했던 모습을 세계 강팀에게 보여주었고, 세계 강호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축구 종가인 영국 연합팀은 여기에 휘말려 한국의 동메달 획득 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전리품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브라질 국대에 그대로 뛰어도 될 정도의 정예를 엄선한 브라질도 한국의 이런 조직적인 미드필더 플레이에 말려서 전반전 초반을 그대로 내 주고 밀리기까지 했습니다.]




2010월드컵 전에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화끈하지 않고 뭐하는거냐?' 라는 비난에 대해 전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그 이전, 한번 밀리면 그대로 끝이었고 그때 골 먹어서 무너진 한국축구가 아니다. 잡은 경기는 절대 놓치지 않고 뒤진 경기도 만회하는 그동안 '아쉬워했던' 것을 많이 바꿔버린 것이 2010 대표팀이다" 라는 긍정적인 평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대표팀은 2010월드컵 대표팀의 경기력을 한단계 더 격상시킨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의 '골짜기 세대'라는 평을 무색케 만든 것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축구에 있어서 "올림픽 대표팀이 국대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들은게 두어번 있습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과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2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들은 많이 대표팀에 합류하고 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 멤버들은 일찍부터 시작된 혹사로 인해 묘하게 일찍 은퇴하고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재능에 비한다면 지금 올림픽 대표팀 세대들을 보기에는 '번뜩이는 면'에서는 떨어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동메달의 세대는 한국축구의 이른바 '사관학교' 라 할수 있는 프로팀의 유소년 팀들에서 나온 2세대급의 선수들입니다.(어찌 보자면 3세대급이기도 하지만요) 1세대의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뒤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나온 인재들입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는 이전의 한국축구와 격이 다릅니다.


[사진은 조이뉴스에서 가져왔습니다]


구자철 선수의 백태클 사진입니다.
이전에 이런 플레이를 잘못해서 퇴장당하고, 경고 먹고, 그래서 골 허용해서 날려버린 경기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플라티니는 1998년 월드컵에서 벨기에vs한국 경기를 놓고 '한국 선수들은 개인기량 미달' 이라는 혹평을 대놓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한국 선수들은 공을 자기가 원하는 위치에 놓을 줄을 모른다'였습니다)

이게 한국축구의 1990년대까지였습니다.
요즘 이정도 기술은 초등학교 선수들까지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된게 이제 7-8년 되었습니다. 2005년경 초등학교 유소년 교실을 지도하려 온 프로축구 현역 선수들이 입을 쩍 벌리면서 "태클은 10살 미만의 얘내들이 나보다 더 잘한다"라고 인정하고, 이 어린이들을 주목하라고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던 때입니다.

그 무렵의 13-15살이었던 어린이들이 지금 올림픽 대표팀 세대입니다.
이미 떡잎부터 기존의 세대와 달랐던 이런 선수들에게 감히 '골짜기 세대'라뇨?
하긴 그럴 만 합니다. 고 이상헌기자가 가장 많이 받은 전화와 질문이 '이 선수 누구지?' 였답니다.
청대나 올대급에서 뜨면 그 선수의 이름과 그때의 플레이는 알지만 '그 전의 스토리'는 전혀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그만큼 이상헌 기자의 빈자리는 이 글을 쓰면서도 크게 느껴집니다.


이번 올대의 미드필드들에 대한 찬사를 봅시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골 못넣고 뜬' 최초의 미드필더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중계방송 곳곳에선 '골도 못넣은' 미드필드들을 애타게 부르면서 '저들이 어서 수비를 해 줘야 합니다' 라고 하면 어디선가 번쩍! 하고 나타나서 수비를 해 주었습니다.
공격에서도 '이 선수가 지원을 해 줘야 할 텐데요'라고 하면 그 자리에 그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전엔 그런 말도 못하고 그냥 뚫리다가 최종 수비수 누군가가 몸을 던졌다는 소리 하던게 한국 각급 대표팀의 세계대회에서의 중계 단골 멘트였습니다.
이젠 선수들이 경기의 흐름을 알고, 자신들이 그 흐름을 만들 줄 알게 된.
그간 한국축구의 경쟁력에 대해 아쉬운 부분중 하나였던 '경기 흐름'에 대해서 일대 반역적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을 저지른게 이번 올림픽 대표팀인 겁니다.

이전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1세대 온라인 축구동호회라 할 수 있는 하이텔 축구동호회에서 이영표와 김남일의 팬클럽 게시판이 만들어진게 언제냐면, TV 방송에서 이영표와 김남일이 골 넣은 뒤에 생겼습니다.
'골을 넣던가 기가막힌 어시스트를 하던가' 해야 팬클럽이 만들어졌던 때입니다. 그 전까지 그 선수들은 철저한 무명이었고 '축구팬의 관심도 못받았던' 때입니다. 언론에서 다뤄줘야 선수를 알기라도 하죠...그런 때입니다.
(이 점에선 홍명보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축구의 정점은 '골' 입니다. 그러나 골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정과 팀을 뒷받치는 '미들'들이 '골'이 없이 이렇게 뜬 것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얼마 없는 '일대 사건'입니다.



더구나 이를 위해 안익수 감독이 시즌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선수차출 지원은 올림픽 대표틔 동메달에 큰 몫을 해 줬습니다.
이번 동메달의 1/3은 가히 '안익수 감독의 동메달'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리그 초반 비난받은 안익수 감독의 '질식 축구'는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조직력에서 큰 몫을 해 주었습니다.
팀의 주축선수를 차출해 나가는 '감독으로선 생각하기 싫은 상황'에서의 협조는 가히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동메달에 빼놓을 수 없는 협력자가 안익수 감독입니다.
사진은 뉴시스에서 가져왔습니다.]





안익수 감독이 2012년 리그 초반 '질식수비'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조직력과 올대의 조직력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질식수비에 대한 설명은 http://www.feverpitch.kr/45 을 참고하세요)

더구나 그 중심선수들과 골키퍼까지 장기간 올림픽 대표팀에 내 준다는 것은 '자기 팀의 성적'이 우선되어야 하는 프로팀 감독으로선 감히 결정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안익수 감독은 가히 '대인배'로 까지 찬양받기도 했지만 정작 '동메달의 순간'에는 다루어진 기사가 적은 것은 참으로 아쉽습니다.

대표팀 감독의 입장으로선 이러한 조직력들을 다 갇춰 놓은 진영을 통채로 이식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다는 것은 한 팀의 척추를 몽땅 빼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허락될 부분이 아니지요. 이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줄줄이 사탕으로 꿰고 있는 슈퍼클럽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만큼 이번 동메달에 큰 힘을 보탠 분으로 안익수 감독을 꼽는데 부족함은 없습니다.

박종우 선수의 정치적 세레모니에 대해선 최근에 결정이 났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더불어 홍명보 감독의 등장은 대한민국 감독상에 있어서 또 다른 딜레마이자 대한민국 축구계의 또다른 재편성을 예고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따로 한 꼭지 써야 할 정도의 글인지라. 다른 글로서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동메달에서 나온 여러 가지들은 한국축구에 있어 또다른 숙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유소년축구 육성에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안좋은 일도 있습니다.
많이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 부정적인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점이 향후 한국축구의 방향을 결정지을 문제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한국적'이었던 '정서'를 변화해야 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2004올림픽 세대들은 일찍 은퇴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2002 세대의 그늘이자 골짜기 세대가 되어버린 세대입니다.
이번 2012 올림픽 세대는 20년전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세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세대는 향후 한국축구의 5-6년을 책임져 주었습니다. 이번 선수들도 그럴 수 있을까요?
라는 물음표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1위로 놓은 것은 단순한 성적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축구의 이전 5년과 향후 5년을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 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동메달' 이라는 성적에만 만족하면 그걸로 끝날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빛'이 아닌 '어두움'도 살펴봐야 하나 이 글에서도 그 '어두움' 부분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은 한국 언론의 한계이자 인터넷 글의 한계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도 쓰려다 움찔 해서 쓰지 못했으니까요.

2012년의 이야기가 본의 아니게 길어졌습니다.
이 부분이 최종 마무리 될 때까지 기다리다보니 지리한 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해를 보더라도 작은 일이 있었겠습니까만은, 이번 건들은 의외로 더 큰 건들이다보니 신경쓴다는 것이 개인적인 사정과 곁들여져 질질 끌게 되었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22일은 FeverPitch의 1주년입니다.
1년간 달려왔고 올해도 또 달릴 것입니다. 이번 한해도 계속 좋은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FeverPitch의 필진들은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