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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경기장 폭력-열정과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덮을수는 없다.


 
글쓴이 : 홍차도둑

'훌리건'이라는 단어가 있다. 정확한 어원은 여러가지지만 어원들의 공통점은 '폭력'이라는 부분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축구장에서의 폭력을 특별히 '훌리건'이라는 단어로 지정하고 이들의 그러한 것을 '훌리거니즘'으로 정의한 유럽축구의 관중들의 응원 방식을 알게 되면 우리는 놀라게 된다.

[AFP/PIERRE-PHILPPE MARCOU 기자의 사진.
마르세이유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스에서의 경기 때 출동한 경찰 기동대.
하늘색 옷을 입은 올림피코 마르세이유 팀의 응원자들은 열정적인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폭력적이기도 하다. 열정과 폭력은 쉽게 전환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무서운 것이다]



1970년대 즈음 '근대 서포터'의 효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리버풀의 'The KOP'을 필두로 하는 잉글랜드 클럽 문화는 1980년대 이후 완전 조직적 해체라는 외부 통제를 당해야 했다.

사실 '훌리건'이라는 말은 새로 생긴 말이다. 그 이전에는 '스킨헤드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캐주얼'이라 불리는 특징적인 조직들의 등장 이후에 '훌리건'이라는 말로 정리하게 된다. 이건 신조어라는 거다. 실제로 1980년대에 발표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파인애플 아미'에도 이러한 축구장의 폭력조직이 나오는데 스토리 작가인 쿠도 카즈야는 '스킨헤드족'으로 칭하고 있다.
('파인애플 아미'는 1985-1988년 동안에 발간되었다)

이러한 조직적인 응원의 비극이 이른바 '헤이젤 참사'로 이어진다.
이날 벨기에의 헤이젤은 완전 패싸움터였다. 이후 이어진 '힐스브로의 비극'으로 인해 잉글랜드의 서포터 문화는 단절되어 버리고 만다.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조사 뒤에 내놓은 대책은 강경했다.

중요한 것은 뭐?
단체 응원의 저지였다. 그리고 응원도구의 반입 금지. 그리고 축구장 주변에서의 알콜류 판매 금지 및 집단 모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단체표도 금지되었다.
한 단체가 표를 샀다 하더라도 경기장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경기를 봐야 했다. 모이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거기다 서서하는 응원도 금지되었다.

EPL중계를 보면서 골 들어가는 순간 관중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그거다. 평소에는 일어서서 응원을 못한다.
골 넣은 그 순간만 잠깐 '눈감아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정도까지 강경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전통적인 서포터 집단의 쇠퇴였다.

부부젤라를 2010년 월드컵에서 보고 신기해 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19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면 축구장에서 부부젤라 같은 나팔을 보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추방된 나팔은 2010년 남아공을 통해 등장하기 전 까지 무려 '산발적으로' 보이긴 했다지만(심지어 수원 창단 직전에 수원이 부부젤라 판매를 놓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잊혀져 버렸고 그 결과 남아공 월드컵때에 '저거 뭐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던 거다.

나팔이 왜 경기장으로 못들어왔을까? 무기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에서 비가 올 때 관중들이 우산 안쓰고 있는 것도 거기서 기인한다. 우산도 무기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은 경기장 반입 금지이다)


[잉글랜드 축구장에서의 반입 금지 물품. 비디오카메라나 카메라는 '경기 자체'가 '저작권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는 부분이다. 그 외는 잘 보면 거의 무기류 및 무기로 바뀔수 있는 것들이 물품 제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찌르거나 때리거나, 던져서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재질이기만 해도 반입 금지된다. 그 때문에 사진 하단에 보면 AND ANY ITEM LIKELY TO CAUSE INJURY 라고 적혀있다. 저기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상해를 줄 수 있는 것들은 반입 금지된다. -사진촬영 홍차도둑 2000년 '올드' 웸블리 경기장에서 촬영]


더 심할 경우는 물병도 못가지고 들어간다. 가지고 들어가는 물병은 600ml이하여야 하고 그것도 뚜껑 열고 해야 한다. 왜? 뚜껑 열려 있으면 병을 던져서 날라가는 동안에 속의 물이나 액체가 다 빠지니까 그렇다. 안에 물이나 액체가 들어 있으면 그 무게로 인해서 타격시 사람이 크게 다치니까.

월드컵에서 음료수 파는 사람들이 종이컵 들고 다니면서 그 안에다가 음료수 넣어주고 끝인 이유도 같은 거다. 던지거나 찌르거나 때릴 수 있는 물건의 반입금지가 현재 EPL이다.

지금 EPL의 응원 문화가 한국과 다른 이유는 그것이다. 그러던 시절이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확산된 가장 큰 이유는 자체확산이었고 말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팀을 사랑해서 한거 아니냐'

라는 감싸안기는 어느 순간 '우리 팀을 위한 일이면 뭐든지 상관없다'는 것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체 응원의 스톱이었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떠한 강경의견이라도 '우리 팀을 위해서라면!' 이라는 말 하나면 OK였다.

심지어 우리팀이 아니라 하여 상대팀도 아닌 제3의 팀의 유니폼을 입고 온 사람을 폭행하는 일 까지도 있었고 제3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에게 욕설은 기본으로 해 댔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영웅주의는 위에 설명한 '캐주얼' 족들과 합해지면서 더욱 조직적이 된다.

사실 써포터들의 자리라 하는 경기장 골대 뒤의 자리가 된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경기장에서 시야가 가장 불리한 곳인 골대 뒤는 '차등 가격'을 적용할 때 가장 싼 곳이었다. 즉 싸니까 들어간 곳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것이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었던 초기 서포터였던 반면 이러한 행동을 취해 가면서 전면에 나섰던 '캐주얼'들은 이른바 중산층 계급이었다.

캐주얼들은 '팀을 위해서라면!' 이라는 이론을 전파하고, 정립하는데 앞장섰다. '팀을 위해서라잖아!' 라는 명목하에 생긴 이른바 지금 말로 말하면 '친목질'이었던거다. 그것을 통해 '그래도 폭력은 삼가야 한다'는 의견을 '팀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으로 매도하고 그런 의견을 낸 사람을 왕따시키고 서포터 조직에서 축출시켰다.

거기에 그들은 '원정응원'을 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었다. 그로 인해 영국 전체에 이러한 훌리거니즘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리고 이것은 영국 내를 넘어 유럽 전역에 확산시키게 된다. 바로 '우리팀을 위해서!', '우리팀을 사랑하기에!' '우리팀 말고 다른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이 행동의 절정이 바로 '헤이젤 참사'였다.

'헤이젤 참사'는 낡은 경기장에서 일어난 경기장 붕괴 사고로 볼수도 있지만, 그 원인이 서포터들의 싸움으로 인해 생긴 진동이 경기장 구조체를 무너뜨린 것이기도 했고 이미 경기 전부터 헤이젤 시내서부터 양팀의 'The KOP'과 유벤투스의 '울트라스' 들이 한판 뜨고 있었다. 경기장에서의 폭력사태는 그 연장이었을 뿐이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