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홍차도둑


오늘은 8월 9일입니다.
이날은 한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날입니다.

바로 故 손기정 선생님께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날입니다.



[결승선 통과 장면입니다. 이와 함께 당시 '인간의 한계기록'으로 불리던 2시간 30분의 벽을 공식적으로 처음 돌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도 베를린 올림픽 관련으로 책자가 나왔고, 손기정 선생님의 자서전에도 이날의 이야기는 너무 잘 나와 있습니다.

사실 한국계 라는 거까지 더 넓게 본다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손기정 선생님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적으로도 처음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 출전소속이 일본으로 되어 있고 공식 등록이 Kitei SON 으로 되어 있습니다.
(손기정 선생님의 영문표기 [기테이 손]을 누르시면 IOC의 관련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여기에는 당시 한국인이지만 왜 일본 국적으로 뛰어야 했는지 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IOC의 공식 기록 페이지.
http://www.olympic.org/content/results-and-medalists/eventresultpagegeneral/?athletename=&country=&sport2=32588&games2=&event2=32528&mengender=true&womengender=true&mixedgender=true&goldmedal=true&silvermedal=true&bronzemedal=true&teamclassification=true&individualclassification=true&winter=true&summer=true&searchpageipp=10&searchpage=2 이건 다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 공식 등록은 다시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서울역 근처의 손기정기념체육공원의 손기정 기념관에는 손기정 선생님의 하신 말이 걸려 있습니다.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컬러로 찍은 사진이 있던건지 아님 후에 흑백사진에 채색 내지는 포토샵으로 만든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상식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두고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 선생님께서 '손기정이 부러웠다. 1등을 한게 아니라 가슴의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묘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회고하셨던 장면입니다]


손선생님의 심정은 이 엽서 한장으로 소개될수 있을거 같습니다.


[손기정 선생님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직후 한국의 지인에게 보낸 엽서입니다. 당시 베를린을 '백림'이라 한역한 것이 보입니다. '슬푸다!!?' 라는 단 석자.]


엇그제 이 엽서를 소개한 기사에 댓글을 단 어떤 사람이 '맞춤법도 틀리고...' 하는 참으로 무례하고 무식한 소리를 남겼더군요.
사실 귀국사진 남아있는것도 검색해서 보시면 이건 뭐...경찰서 연행 장면이라고 써도 믿을만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 때문에 손선생님은 귀국이 늦어지기도 하고 귀국 직후에도 후다닥 보내는 등, 당시 민심에서 무슨 폭동 일어나지 않을까 겁내했다 하니까요.

시간이 지나 이제 1988년에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그분의 한이 1988년 올림픽을 하면서 풀렸을까요? 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1988년 올림픽 성화 최종 봉송주자는 손기정 선생님이 당초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당시나 지금이나 '손기정 선생님 아니면 누가 서울 올림픽의 마지막 최종 주자를 하랴?' 할 정도의 당연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몇주전에 언론에 '손기정 선생님이 최종주자로 확정되었다' 라고 새어나간 거 때문에 결국은 최종 주자가 되지 못하셨습니다.

모든걸 비밀로 해야 한다는 당시 정책에 따라 최종주자가 아니라 임춘애 님에게 성화를 넘겨주는 '구세대에서 신세대에게의 전달'이라는 역할로 바뀌셨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손선생님께서는 이후에도 아쉬움을 표하지 않으셨습니다. '성화 주자를 한것만으로도 어디냐' '1936년과 달리 이 땅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올림픽을 연다는 것이 어디냐' 하는 입장이셨습니다.
그 속내는 모르겠습니다. 밝혀주지 않으신 채 떠나셨으니까요.


[1988년 올림픽 성화 점화 직전장면, 손선생님은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밖에서 성화를 받으신 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시고 한바퀴 도신 뒤에 임춘애 님에게 성화를 넘깁니다. 최종 주자로 내정되셨다가 '보안'이라는 거 때문에 일생일대의 영광을 얻지는 못하셨습니다. 꼭 그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6년 뒤 신기하게도 같은 날에 바르셀로나에서는 까마득한 후배인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기가막힌 예측력을 자랑하시던 손선생님께선 "1992년 마라톤 우승후보는 누굽니까?" 라는 여러 언론(외국 언론및 일본 언론까지도)의 질문에 "이번엔 한국 아니면 일본 선수가 우승할 것 같다" 라는 예측을 하셨습니다.(손선생님은 이런 예측에 있어선 가히 신의 경지셨습니다.)

그래서 손 선생님께서 준비해 간 태극기를 한국 임원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황영조 선수가 골인하면서 발이 풀렸기에 관중석에 계신 손선생님과의 대면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루어졌다면...이건 정말 역사의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후배가 선배의 한을 풀어준 장면으로 스포츠 사진 역사에 엄청난 장면으로 남았겠지요.

그래도 8월 9일, 56년의 시공간을 넘어 한민족의 선수가 마라톤을 제패했다는 기록은 남았습니다.
올림픽, 그리고 스포츠사에 있어 한 페이지를 충분히 차지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날로부터 77년. 딱 '희수' 가 되는 날입니다.
손기정 기념관, 손기정 기념공원은 서울역 옆에 있습니다. 찾아가기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언덕길을 좀 올라가긴 해야 하지만 그날 베를린도 30도가 넘는 폭염이었답니다.

손기정 기념관의 그 자리는 이전에 양정고등학교, 손기정 선생님의 모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양정고 자리에 있는 손기정 선생님의 두상]


그리고 손기정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그 묘목이 이제 77세의 나이로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무입니다.
흔히 월계수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잘못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월계관은 이미 잘~ 말려져서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 나무는 대왕참나무(핀-오크)입니다. 힛총통이 준 바로 그 묘목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기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77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한국 스포츠는 이런저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일어나는 여러 스포츠계의 사건들을 보며 손선생님은 어떤 꾸짖는 말을 하셨을까요?

오늘은 잠깐 저기에 들릴까 합니다.

8월 9일
한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날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라도 빠짐없이 가진 채 스포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그런 일입니다.




PS : 스포츠를 스포츠가 아니게 만든 사람들은 제대로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당신들 때문에 당신들이 '사랑한다는' 것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가슴의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박은 못. 못을 뽑더라도 그 못자국은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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