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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보완계획48

벵거 아스날의 딜레마가 낳은 비극




내용은 뒷전이고 오로지 결과를 쫓고 있음에도 이기지 못하는 아스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승리가 의무와도 같았던 이 클럽은 현재 자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닫은 감독과 함께 처참하게 추락하고 있다. 화려하고 가끔은 아름답기까지 했던 그들의 스타일도 이제는 유튜브를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스날 팬들은 벵거가 아주 사소한 타협만 해준다면 클럽의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사소한 타협이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 되는 것이었다. 우승경쟁을 펼치기엔 힘이 부족한 스쿼드란 점을 인정하고 전력을 보강한다. 이런 당연한 요구에도 극적인 타협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스날의 추락이 그다지 놀라운 사건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무관이 시간이 7년차에 접어들고 창단 125주년을 맞은 올 시즌의 상황은 더욱 특별하다. 아스날 팬들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비참한 감정과 굴욕을 경험하고 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사미르 나스리 등 선수 수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에야 보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굴욕적인 패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부랴부랴 합류한 새로운 선수들은 클럽에 녹아들 시간도 없이 괴멸직전의 전장으로 내몰렸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던 시기에 방관자의 자세를 취했던 것. 지난 여름의 실책이 불안한 리그 4위와 각종 컵 대회 탈락, 산시로에서의 참패를 낳게 된 배경으로 작용한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결과 완급조절과 정확성이 사라진 미드필드는 특유의 템포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본의 아니게 반 페르시는 개인의 역량이 클럽의 브랜드 가치를 초월한 선수가 되었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자존심을 걸고 싸워야할 맨유를 상대로 칼 젠킨슨, 요한 주루, 아르망 트라오레, 니코 예나리스와 같은 평범함에도 못 미치는 선수들이 주전으로 출전하는 현실은 악몽에 가깝다.


벵거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무패우승 이후 7년의 시간 동안 경기장 안과 밖에서 적지 않은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 불행하게도 지나친 긴장이나 나약함은 클럽의 체질이 되어 버렸고 고집스럽게 지켜온 주급 구조의 부작용은 매년 주력 선수들의 연쇄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안정감 있는 골키퍼의 존재나 수비의 중요성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문제는 벵거 스스로 이런 실책들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25경기 35실점이란 기록과 주급 총액의 상당부분이 경기에 나오지 못하거나 그저 형편없는 선수들에게 낭비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부정적인 이슈들이 클럽을 잠식하는 동안 정작 벵거는 현실에 눈을 감은 채로 완고한 태고를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구단주와 최고 경영자까지도 명백한 원인과 배경이 존재하는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패우승 이후 7년의 시간 동안 가장 긍정적인 이슈가 티에리 앙리의 2개월 임대 소식이 전부라면 누군가는 나서서 해명을 해야 한다.


아스날 팬들은 리그 3~4위 정도의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클럽을 위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티켓을 기꺼이 구입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벵거를 위한 노래를 불러 주었고 아스날의 부활은 반드시 벵거의 손에서 실현되기를 원했다. 이런 믿음의 바탕에는 벵거의 남다른 경제적 감각과 미래에 대한 설계가 없었다면 지금의 아스날도 없을 것이란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벵거와 아스날이 재정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 영속성의 기반을 닦는 일. 즉 미래 아스날의 방향성을 놓고 딜레마에 빠져있는 동안 그 대가는 고스란히 아스날 팬들이 치르고 있다. 지쳐버린 팬들은 이후 경기들에서 그 어떤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시즌을 시작한 결과일 뿐이다.


Text by 배정훈 / Photo by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