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풋볼보완계획48

최강희 감독이 '신'은 아니잖아요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초반부터 강력하게 나온 쿠웨이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대표팀은 타이밍 좋게 투입된 교체 선수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2-0 승리를 기록했다. 빈 공간이 넘쳐났던 중원은 기성용이 투입되면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우월한 힘과 높이를 갖춘 김신욱은 쿠웨이트 수비를 좌절시켰다.


최선의 결과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주도권을 뺏겼을 때 어떤 형태로 공격과 수비를 펼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던 것 같다. 이동국의 골이 터지기 전까지의 흐름은 우리가 언제부터 3차 예선 따위를 걱정했냐며 광분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공은 둥글다. 플레이 스타일의 완성도와 성숙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놀라울 것이 없다. 


우려했던 고비는 넘겼다. 이제는 최종예선이다. 승점 1~2점에 월드컵 출전이 좌우되는 만큼 승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실패는 물론이고 사소한 위기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만화축구 연재를 서둘러 종료시키고 현실로 복귀한 것이다. 쿠웨이트전에 선발로 출전한 11명의 선수들 가운데 6명이 30대 선수였던 점이나 직선적인 플레이에 의존하던 장면들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다른 무엇보다 안정감이 필요하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딱히 평가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쿠웨이트전을 둘러싼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장기 합숙은 물론이고 날씨나 시차 대비 등 치밀한 과정을 거친 쿠웨이트를 상대로 우리가 했던 말은 고작 이 고비만 넘기고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가 전부였다. 현실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즈벡과의 평가전 직후에 쏟아진 과대평가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강희 감독이 너무 교활하고 너무 영리해서 평가전 한 번에 모든 실험을 끝냈다니. 언론은 스스로 최강희 팬덤을 자처하며 최소한의 견제나 거리도 두지 않고 있다. 어쨌든 덕분에 역대 전적 8승 4무 8패의 쿠웨이트는 딱 3일만 준비해도 충분한 팀으로 전락했다. 이 정도면 종가 잉글랜드의 자존심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최강희 감독은 신이 아니다. 대표팀은 신이 아니라 축구감독을 데려온 것이다. 최강희 감독의 힐링에 쓰러진 선수가 일어나고 이동국이 골을 넣지는 않는다. 지금 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과대평가와 편파적 보도가 아니라 현실적인 분석이다. 대표팀이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 장기적인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공들였던 계획을 백지화 시켰다면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50년 뒤에도 '가자! 16강으로!!'를 외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Text by 배정훈 / Photo by 대한축구협회 이상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