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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보완계획48

축구대표팀 옆 대나무숲



1. 접근방식의 차이. 이란은 선수와 관중이 대동단결하여 결사항전의 자세로 임했던 반면에 대표팀은 이란전을 기점으로 일종의 전환점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우선 그간 공수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이동국과 이정수를 아예 명단에서 제외시켰죠. 우즈벡전 무승부를 계기로 그 누구도 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자 했던 최강희 감독의 의지로 풀이됩니다. 동국아, 사실은 훼이크야 준비하고 있어



2. 전환점이란 맥락에서 변화의 폭이 컸던 쪽은 포백 수비진. 우즈벡전과 비교하면 곽태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모두 변화. 사실상 물갈이에 가까웠네요. 오범석은 레바논전에 선발로 출전한 경험이 있지만, 정인환과 윤석영은 이란전이 최종예선 데뷔전이었습니다. 이런 모험적인 시도를 가능케 했던 이유는 이란전 이후 예정된 4경기 중 3경기가 홈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있겠지요. 즉 설령 이란에 지더라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겁니다. 




3. 현 수비진의 면면을 보면 박주호와 윤석영이 버티는 왼쪽 측면에 비해 오른쪽 측면은 마땅한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군요. 중앙 수비수 조합에도 실험이 필요한 것 같구요. 이는 매 경기마다 수비 라인업이 변하는 결정적인 이유겠지요. 남아공 월드컵 끝나자마자 수비진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던 일본 대표팀과 비교가 되는 대목입니다. 툴리오라는 확실한 카드를 버리면서까지 말이죠.



4. 대표팀도 이란도 노골적으로 롱 패스를 활용하더군요.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이란은 레자 구차네자드의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주로 대각선 롱패스로 뒷공간을 노렸고, 대표팀은 김신욱의 노예질 머리를 노렸죠. 방식은 같으면서도 디테일은 달랐던 셈입니다. 근데 김신욱이 머리만 쓰는 허접한 공격수는 아니잖아요. 발밑으로 주면 시간도 벌어줄 수 있는데. 김신욱의 피지컬은 겉치레가 아니야!



5. 경기는 90분 내내 일관적인 패턴으로 흘러 갔습니다. 양 팀 모두 롱 패스를 활용했기에 점유율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쉬운 점은 적어도 대표팀 레벨이라면 롱 패스에만 매몰되는 전술적 실책은 피했어야 합니다. 이는 고지대 원정에 따른 체력적인 부담 이전에 선수 개개인의 판단력 문제이지요. 전체적으로 볼 처리가 느렸다는 점에서 판단력 부재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위협적인 장면은 세트피스에만 집중됐고, 승부를 가른 것도 세트피스였죠. 조심스러운 경기에서 자주 나오는 결과입니다.



5-(1) 정성룡의 발에서 시작되는 핀 포인트 롱패스는 너무 뻔했어요. 이란의 대응은 볼 낙하지점에 가까운 위치에 있던 미드필더가 김신욱의 도약을 방해하고, 뒤에 있던 수비수가 안전하게 걷어내는 식. 김신욱의 도약을 방해한 미드필더 덕분에 잘랄 호세이니는 김신욱과의 사이즈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죠. 대조적으로 측면에서 파 포스트 쪽으로 전달되는 크로스에는 유감없이 강점을 발휘하더군요. 확실하게 강점을 보여주는 지점이 있음에도 왜 그렇게 중앙을 고집했는지는 며느리도 모를 겁니다. 그깟 측면 좀 쓴다고 고자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6. 오히려 이란이 전술적으로 융통성을 발휘했습니다. 조심스러운 운영의 맥락에서 여의치 않을 시엔 백패스를 활용하여 볼 점유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하더군요. 대열을 재정비하는 시간도 벌었구요. 백패스가 하나의 전술적 옵션으로 기능한 예입니다. 일단 전방으로 볼을 보내는 일에만 급급했던 대표팀이 반드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지요. 또한 이란은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얼리 크로스 또는 직접적인 침투를 통해 간헐적으로나마 구체적인 패턴을 구사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란은 이길 만한 경기를 했어요. 실수가 없었던 수비는 말할 것도 없죠. 



7. 앞서 전환점을 언급했지만, 경기 내용 자체에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현 대표팀은 상대의 밀집수비에 대응하는 메뉴얼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이는 쇼자에이쨔응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리드를 잡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사실 이런 흐름에 변화를 주던 선수가 바로 김신욱이었죠. 대표팀의 공격이 지지부진하고, 상대 수비의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에 김신욱이 교체로 나서 압도적인 힘과 높이로 제압하는 패턴. 즉 결정적인 패인은 현 대표팀 체제에서 유일한 전술적 카드였던 김신욱 활용의 실패. 이 대목을 알기 쉽게 이해하려면 케니 달글리시와 앤디 캐롤의 관계를 떠올리면 됩니다. 망했어요




8. 이란이 딱히 공격의지가 없고, 수적우위라는 확실한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깊게 내려간 저 수비라인은 대체 심지어 곽태휘는 최종 수비라인 뒤에서 대인방어를 시전합니다. Nice Boat!!



9. 한국축구 위기론은 제끼고, 현실감각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이란전 패배가 선수 개개인의 활약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팀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즈벡전에 이어 밀집수비에 대한 대응의 부재가 확실하게 드러난 경기이기도 하니까요. 공격수 숫자 늘린다고 골 넣는 건 아니랍니다 근데 실컷 위기론 팔아먹던 기자 양반들은 이제와서 뭔 냄비여론 탓하고 자빠졌대요?



10. 최강희 감독 부임 초기에는 이동국에게 집착했다가 최근에는 제2의 박지성 찾기 놀이나 하고 있으니. 요 몇 년 간 아르헨티나가 어떤 꼬라지를 겪었는지를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하나 싶어요. 일관된 방향성 설정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리오넬 메시라는 범우주적 천재가 있어도 주변부 외곽이나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거기다 나름 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는 주제에 슈퍼스타의 우발적 출현이나 바라는 건 너무 처연한 발상이예요. 얼마 전까지 유령집단이었다가 다시 부활한 기술위원회와 최강희 감독이 힘을 합쳐 현재 대표팀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장기적인 방향성 설정에 대한 논의를 하리라 믿어요. 설마 남아공에서 브라질까지의 4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과도기로 전락시킬 생각은 아니죠? 



Text by - BJH48



Photo by - SBS 뉴스 홈페이지, 골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