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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보완계획48

역습의 제만



4-3-3 전형을 기본으로 정밀한 공격 메커니즘을 완성하여 공격에 공격을 퍼붓는다. 강팀을 상대하든 약팀을 상대하든 변하는 것은 없다. 결과에 개의치 않는다.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앞으로 뛰어나가 공격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것은 자타공인 '공격밖에 모르는 바보' 즈네덱 제만이 걸어온 길이다. 그것도 수비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걸어온 길이다. 정면승부보다는 승점 3점이 우선시 되는 이탈리아에서 오직 공격만을 추구하는 제만의 방식은 혁명에 가까웠다. 이탈리아 축구의 상식이나 현대축구의 흐름도 제만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제만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와 승점 3점이 아니라 공격적인 면에서 완벽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직 공격만을 추구하는 성향 탓에 수비 시스템과 전술적인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특유의 공격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일도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결과를 원하는 클럽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즉 공격의 미학에 환호하는 이들에게는 '제마니즘'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았던 반면에 승부의 세계에서 제만의 존재는 아웃사이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제만이 로마로 복귀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간 로마를 지휘했던 그가 13년 만에 로마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공격을 향한 집착은 여전했다. 지난 시즌 리그 42경기에서 90골을 터뜨리며 세리에B 우승을 거머쥔 페스카라는 제만의 작품이었다. 리그 우승이란 결과만큼이나 놀라운 90골은 제만의 공격제일주의가 빛을 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만의 세리에A 복귀는 시대의 요구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 축구는 빗장의 속박에서 벗어나 젊은 선수들의 패기와 신선한 아이디어를 원하고 있다. 이는 현재 아주리의 수장인 프란델리 감독이 10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티와 네스타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낸 제만의 검증된 선수발굴 능력을 시대가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리 팬들은 로마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 신예 공격수, 마티아 데스트로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시대가 제만의 축구를 비상식으로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최전방과 최후방의 간격을 30m 이내로 조밀하게 유지하면서 강한 압박과 다양한 공격 패턴으로 승부하는 방식이 자멸의 지름길이었던 시대는 지났다. 이는 유로 2012에서 프란델리의 아주리가 보여준 가능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1골을 지키는 축구가 아니라 컴팩트함과 공격적인 진화의 가능성을 증명한 아주리의 성공은 아웃사이더 제만을 자연스럽게 큰 무대로 복귀시켰다. 




전임 루이스 엔리케의 손을 거친 로마는 제만의 이상을 앞세워 다시 한 번 공격적인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중원의 데 로시, 공격에 힘을 불어넣는 측면 수비수 발자레티, 영원한 '로마의 붉은 혜성' 토티는 제만과 함께 로마의 개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제만의 손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난 토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동기부여를 품고 있을 것이다. 로마에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시즌 유로파리그에서 또 한 명의 '공격바보' 비엘사의 빌바오와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1981년에 감독 경력을 시작한 이래로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철저하게 공격 외길을 걸어온 제만이 돌아왔다. 시대의 반역자 내지는 아웃사이더라 불리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은 남자다. 인테르와의 리그 2라운드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발자레티와 데 로시가 경기 중에 부상으로 이탈한 불안한 상황에서도 마지막 한 장의 교체카드를 공격수 라멜라에게 쓰는 제만의 선택을.


이것이야말로 제만의 축구이자 그의 정체성이다. 올해로 66세인 제만에게 이번 로마 복귀는 큰 무대에서의 마지막 도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칼치오 매니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만이 펼칠 공격의 향연과 흥미진진한 전개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으로 32년 경력의 공격장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Text by 배정훈



Photo by Maidirecalc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