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리가의 2012-2013시즌이 개막했다.
선수등록기간 종료까지 약 열흘이 남은 시점의 개막으로, 각 클럽의 수뇌부들은 그라운드와 벤치를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경제위기 여파로 말미암아 라 리가 클럽들은 선수영입에 많은 자금을 투자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에 부랴부랴 영입에 나서는 클럽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적시장의 향방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도 라 리가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막전을 시청한 팬들은 "이번 킥오프 시각은 어딘가 이상하다"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라 리가는 일반적으로 가장 늦은 시간대의 경기가 현지시각으로 밤 10시에 열린다. 섬머 타임 기간이므로 일본(한국)에서는 새벽 5시에 시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개막전에서는 토요일에 열린 마요르카X에스파뇰, 일요일에 열린 레반테X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기가 일본(한국)시간으로 새벽 6시에 시작됐다. (월요일 사라고사X바야돌리드 경기도 같은 시간)
프리메라리가 X EPL 1라운드 좌석점유율 비교
전대미문의 밤 11시 킥오프, 다음날 새벽 1시 경기종료
따라서 스페인 현지의 킥오프는 밤 11시. 느긋한 국민성으로 유명한 스페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포츠를 즐기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2003년 9월 3일 수요일, 호나우지뉴가 바르셀로나 데뷔전을 치렀던 바르셀로나X세비야 경기가 0시 5분(2일 24시 5분)에 열린 적이 있었다. 이는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에 소집되기 전에 경기를 치르고 싶었던 바르셀로나가 '3일 경기'라는 애초 일정을 고집한 데서 비롯된 일종의 사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고가 아닌 라 리가 협회 측의 결정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대에 경기를 배정받은 클럽들은 협회 측에 설명을 요구했다. 다음날 새벽 1시에 경기가 종료되면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홈 팀의 흥행에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협회 측은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그 실상은 모순투성이!?
그러자 협회 측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무더위로부터 선수를 보호하고자 8월 중 경기는 19시 이후에 시작하자는 선수협회의 요청이 있었다. 3라운드 일정부터는 예년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확실히 비시즌 기간에는 밤 11시에 경기가 열리는 지역도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밤 9시 이후에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킥오프 시각은 지리적인 조건과 더불어 휴가 중에도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축구 관광이라는 관점에서 봐 달라"
얼핏 당연한 결정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모순투성이다.
지리적 조건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발렌시아를 본거지로 하는 레반테 경기가 밤 11시 킥오프라면, 발렌시아로부터 불과 70km 미만의 거리에 있는 비야레알의 킥오프 시각도 밤 11시여야 했다. 그러나 같은 주말에 열린 세군다리가 일정에서 밤 9시 이후의 경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세비야의 일정은 더욱 이상하다.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스페인 남부 지역을 본거지로 하고 있음에도 킥오프 시각은 밤 9시였다.
발렌시아나 마요르카의 기후와 비슷한 마드리드에서 열린 두 경기는 저녁 7시, 밤 11시에 열렸다. 협회 측이 설명한 '축구 관광'에도 의문이 따른다. 레반테와 세비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사안에 축구 관광을 운운하는 것은 어차피 휴가기간이라 킥오프 시각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TV 시청률이 최우선, 정작 관중은 외면
즉 협회 측은 시청률이 보장되는 카드를 가장 좋은 시간대에 배치했을 뿐이다.
예컨대 시청률 우량 콘텐츠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우엔 빌바오를 상대하는 2라운드 킥오프 시각이 월요일 밤 10시(한국시각 8월 28일 새벽 5시)로 잡혀있다. 월요일 밤 10시는 시청률이 보장되는 프라임 타임이다. 이 경기가 끝나면 금요일에 모나코에서 첼시와 UEFA 슈퍼컵을 치러야 한다.
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상대인 빌바오는 목요일에 유로파리그 본선 진출권을 놓고 HJK 헬싱키와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오로지 시청률만을 생각하는 협회 측의 결정에 말미암아 클럽의 사정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만이 유리한 조건에 싸우는 불합리함
2라운드 일정에서 가장 비참을 대우를 받는 클럽은 레반테와 바야돌리드다.
비인기 클럽 간의 경기라는 이유로 월요일 밤 10시 킥오프로 결정됐지만, 이를 일본(한국)의 상황에 맞추면 평일 저녁 6시 킥오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홈 팀 바야돌리드는 입장수익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레반테는 빌바오와 마찬가지로 전 주 목요일에 스코틀랜드 머더웰로 원정을 떠나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라 리가는 늘 이렇다. 방송사로부터 환영받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만이 최우선이다.
클럽의 인기 여부가 경기환경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로 불합리한 조건이 난무한다. 비인기 클럽들은 이런 상황을 바꾸고자 분투하고 있지만, 비즈니스를 우선시하는 방송사의 입장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방송사와 비인기 클럽 간의 싸움은 중계권료의 배분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따라서 경제위기 여파로 지갑 사정이 빈곤해진 비인기 클럽들도 어쩔 수 없이 선수영입에 열을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출처 - 스포츠 그래픽 넘버 'TV 최우선으로 심야에 경기 시작! 관중을 외면하는 리가의 속사정'
Text by 요코이 노부유키
Translation by 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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