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아스날> 1부

어두운 새벽길을 나 혼자 비틀거리고 있다. 택시라도 다니면 그나마 위안을 얻으련만 택시조차 다니지 않는다. 저 멀리 희미하게 편의점 불빛이 보이기는 한다. 저 불빛이 나를 기다리는 여자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따위의 망상을 했다.

술에 취한 새벽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술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연말에 계속되는 술자리를 피하면서 소외감을 느끼기 싫었다. 비틀거리면서도 제대로 보고 있는 스마트폰 속 세상은 행복한 기운으로 넘쳐난다. 친구들의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는 밝은 미소와 맛있는 요리, 화려한 취미생활 등으로 꾸며져 있다.

어쩌면 나만 오늘을 비틀거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만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만 월세에 쪼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월세에 쪼들리고 있다는 글을 남겨봤자 타임라인을 더럽힐 뿐이겠지. 생각마저도 비틀거리고 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1분이라도 빨리 잠들면 로또대박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점퍼 주머니에 아무 것도 없다.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은 제대로 있는데, 열쇠를 넣어둔 점퍼 주머니는 썰렁했다.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짜증나게도 방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삭제되었다. 다행히 지갑을 뒤져보니 5만원이 있었다. 5만원이면 동네 모텔에서 하룻밤 자도 2만원이 남는다. 그럼 남은 2만원으로 아침에 열쇠 아저씨를 불러 문을 열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까운 모텔로 발걸음 옮겼다.

<모텔 아스날 1983년 이전 출생자 출입금지>

모텔 입구에 떡하니 붙어있는 저 안내문의 정체가 뭘까.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 사회에서 단지 서른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한다니. 서른살 넘으면 떡칠 자격도 없.. 모텔에서 쉬고 갈 자격도 없단 말인가. 20대를 겨냥한 마케팅이라기엔 이건 너무 무리수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난 아직 20대 중반이란 빌어먹을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주인장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에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 시절은 기가 막힐 정도로 깔끔했다. 호텔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잠깐 멍한 상태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무척 키가 큰 백발의 노신사가 다가온다. 풍기는 아우라가 주인장의 그것이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노신사의 정중한 요청에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준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동안 다시 본 노신사의 키는 역시나 압도적이었다. 신체 밸런스도 훌륭하고 처진 구석이 적은 피부는 제대로 된 관리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확인절차를 거친 후에 키와 세면도구를 받았다.

"저기 1983년 이전 출생자 출입금지.. 그러니까 서른살 넘은 손님을 받지 않는 이유라도 있나요?"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술이 나를 대담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모텔은 6년 전에 증축을 했습니다. 이전에도 서른살 넘은 손님은 웬만하면 받지 않는다란 원칙이 있긴 했었지요. 다만 저는 모텔의 미래를 위해 증축을 결정한 상황이었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그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익숙한 질문인 모양이다.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6년 전에 증축을 하여 지금의 모텔 아스날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텔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죠. 그 일환으로 서른살이 넘은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원칙이 확고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이 모텔이 항상 젊은 분위기로 유지되길 원했습니다. 기존 모텔의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칙칙한 분위기, 불륜의 온상, 매일 들이 닥치는 흥신소 사람들.. 저는 그런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밝고 젊음이 넘치는 모텔. 퀄리티와 포텐셜을 지닌 그런 모텔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젊은 연인들이 이 모텔 아스날에서 단 5분이라도 완벽한 사랑을 나눈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단 5분이라니.. 그거 명백한 조루아닌가. 궤변이라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 노신사의 이상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주민등록증을 보니 주소지가 부산이던데, 고향도 부산이신지요?"

갑작스런 질문이다. 생년월일만 확인하면 될 것을 주소까지 본 것인가. 일단 아무래도 상관없다.

"네. 부산 토박이입니다."

대답을 들은 노신사는 어딘가 모를 아쉬운 표정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제 이름은 아산벽입니다. 고향인 충남 아산에서 따온 이름이죠. 어린 시절 아산에서 보낸 즐거운 날들을 기억하며 아산이 아닌 아산날이라 부르곤 합니다. 아산에 대한 애착이 워낙 강해서 아산 출신 손님들에게 대실은 추가 4시간, 특실에서 묵을 시엔 4만원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손님께서 아산 출신이 아니라 아쉽군요."

대실 추가 4시간에 4만원 할인이라니. 그야말로 파격적인 혜택이다. 다만 이상하게 4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규모도 4층인 것이 증축을 했음에도 4층 정도면 충분히 만족한다는 뜻인가. 거기다 아산? 아산날? 아산 출신이고 뭐고 마음이 통했다면 할인을 해주면 되는 일 아닌가.

"407호로 가시면 됩니다. 아, 침대는 진동형이라 매우 스피디하고 공격적이라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스피디하고 공격적인 침대라. 단 5분의 완벽한 사랑을 위해 진동형 침대가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인가. 여자친구와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혼자다. 앞으로도 그럴지도.

"괜찮습니다. 아직 젊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잘 곳이 필요했을 뿐. 그보다 나를 바라보는 노신사의 눈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그 정체는 서른살이 넘은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있음에도 자신의 이상에 맞춘 확고한 경영철학을 굽히지 않는 자세였다. 그럼 나는 무엇인가. 제대로 거울을 본지도 오래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비틀거리는 내 눈에 확신 따위 있을리가 없다.

407호로 데려다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커플이 모습이 보인다.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도망치듯 빠져 나가지도 않았다. 지금 내 앞을 지나가는 저 커플의 모습이야말로 이 모텔 아스날의 이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버튼을 눌렀다. 로또대박 꿈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지금의 내 모습을 솔직하게 돌아볼 것을 다짐한다. 비틀거리는 짓은 이제 그만둬도 괜찮지 않을까. 

문이 열렸다.

Text by BJH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