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에 월콧은 아스날을 떠날 수도 있다. 재계약 과정이 지지부진했던 선수치고 아스날 잔류를 결정했던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아스날과 월콧의 문제는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스날이 제시한 5년이라는 계약기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단 월콧은 7만 5천 파운드에 불과한 주급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분명한 것은 월콧에게는 7만 5천 파운드 이상의 주급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너무 일찍 알려진 탓에 그의 능력을 두고 극단적인 평가가 오갔던 것이 사실이나, 리그 최고의 윙어로 월콧을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이제 겨우 23살에 불과한 젊은 나이와 폭발적인 스피드, 깔끔한 마무리 능력 등은 아스날을 더 높은 위치로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아스날 팬들은 클럽을 경영하는 높으신 분들을 지하실에 가두고 지난 경기들을 강제로 보여주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제르비뉴, 지루, 포돌스키 등 대부분의 포워드들이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는 와중에 월콧은 자신의 능력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꾼 유일한 선수였다. 이번 시즌 월콧의 경기력에서 지지부진한 재계약 협상에 따른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는가? 터무니없는 주급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돌연 이적 성명서를 발표하여 클럽과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지도 않았다. 자신의 입지를 둘러싼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출전하는 경기들마다 좋은 활약을 펼쳤다. 현 아스날 스쿼드에서 월콧보다 더 많은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반면 패스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램지를 오른쪽 측면에 배치한 벵거의 전략은 매번 실패하고 있다. 심지어 경기에 나오지도 못하는 아르샤빈은 월콧보다 더 많은 주급을 챙기고 있다. 클럽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에게 과한 주급을 지급하면서, 클럽의 미래이자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선수의 가치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아스날은 계속된 선수이탈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한 비상한 준비도 없이 입으로만 클럽의 미래를 외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월콧과 아스날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월콧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맨체스터 더비에서 드러난 루니와 발렌시아 간의 불협화음을 보며 퍼거슨 감독은 새로운 옵션의 필요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상태이자 별도의 적응기간도 필요 없는 월콧의 존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어 최적의 영입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월콧의 역습이다. 주급 10만 파운드는 절대 무리라며 강경한 자세를 유지했던 아스날은 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타이틀 레이스에 가장 앞서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월콧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만약 정말로 아스날이 월콧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아스날 팬들이 느끼는 굴욕감은 정점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이는 부진한 성적이나 비싼 티켓과도 별개의 문제이다. 아스날 경영진이 사는 세계와 팬들이 사는 세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팬들의 굴욕감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준비도 없고 결단도 없는 클럽에 미래는 없다. 파이넨셜 페어 플레이가 아스날의 미래를 구원하지는 않는다.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서 바꿔야 한다. 주급 10만 파운드를 요구한 선수가 미래를 망치고 있는지, 아니면 평범한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지급하고 있는 구조가 미래를 망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월콧의 이적은 아스날, 정확하게 얘기하면 아르센 벵거의 시대를 완전한 종말로 이끌 것이다.
Texy by BJH48
Photo by BBC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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