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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보완계획48

어느 축구 유망주의 추락



모 축구전문기자가 TV 프로그램에서 거만한 축구선수와 그보다 더한 아버지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성격이 궁금해서 검색을 했더니 다양한 분야의 현직 기자들이 출연하여 취재 중 겪었던 에피소드로 토크 배틀을 벌이는 형식이라고 한다. 패널로 출연하는 현직 기자들의 경력도 대단해서 분야를 망라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뒷이야기가 오고간다. 나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거만한 축구선수와 그보다 더한 아버지 이야기는 방송에서 편집되었다. 그러나 제작진에서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미공개 영상으로 따로 편집하여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3분 정도의 짧은 영상에선 그 거만한 축구선수의 일대기가 제작되고 있었다. 유망주로 주목받던 어린 선수가 혈혈단신 유럽으로 건너가 드라마틱한 과정 끝에 네덜란드의 명문클럽에 입단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그러나 이 지점부터 스토리의 성격이 변하는 것으로 모자라 파국으로 치닫는다. 몇 개월 사이에 거한 유명세를 치른 신데렐라가 기자 앞에서 거만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신데렐라는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말투하며 앉은 자세가 영 좋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기자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관계자와 인터뷰 방향을 논의하다 지뢰를 밟는다. 신데렐라의 아버지가 오히려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인터뷰를 없던 일로 만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내용을 편집한 제작진의 결정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전적으로 기자의 말이 100% 사실이라 가정해도, 그다지 새로운 에피소드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는 나이 어린 선수의 태도에 문제를 삼았다. 즉 민증부터 까고 보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위계에 따른 예법의 문제인 것이다. 사실 구체적으로 선수의 나이를 언급하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리오넬 메시의 예를 들며 실력적인 부분까지 문제삼던 기자의 어법에선 처음부터 수평적인 관계로 시작된 인터뷰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자는 무려 '추락'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신데렐라 스토리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그렇게 거만을 떤 뒤로 명문클럽에서 방출당하고, 간신히 자리를 얻은 곳은 이전의 명문클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작은 클럽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주전은 커녕 벤치 신세를 전전한다는 것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끝이었다. 친절한 기자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여 영상을 보는 축구팬들이 그 거만한 신데렐라가 누구인지를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영상을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짜증을 느낀 지점은 이제 겨우 20대 초반에 불과한 선수의 커리어를 벌써부터 추락이라 단정 짓는 뻔뻔한 접근에 있었다. 아무런 해명도 할 수 없는 신데렐라는 상상도 못한 곳에서 생매장을 당한 셈이다. 그리고 그 추락을 나이도 어린 주제에 유명세에 도취된 대가라는 한심한 사유를 덧붙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참고로 기자가 추락의 근거로 정한 '작은 클럽'을 거쳐간 선수로는 로날드 쿠에만, 미카엘 라이지거, 루이스 수아레즈, 아르옌 로벤 등등이 있다.



소슥 클럽을 옮기는 일에는 감독의 성향이나 플레이 스타일, 출전 시간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자는 모든 원인을 예법의 문제로 치환하여 스스로 진실을 외면하는 극단성을 드러냈다. 접근 자체가 극단적이었기에 추락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 설마 그 바닥의 보편적인 정서가 예법을 갖추지 못한 어린 선수의 추락에 통쾌함을 느낄 정도로 변태적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선수 개개인의 성향과 개성을 존중하고, 기자에게 예법을 갖추지 못한 선수도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스포츠 저널리즘을 원한다. 악동과 문제아의 실패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는 시대에 이 나라에선 신데렐라로 추앙받던 어린 선수가 사소한 문제로 공개적인 생매장을 당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진다. 성공한 자에게는 상상 이상의 영웅 대접을, 실패한 자에게는 상상 이상의 가혹함을! 




Text by BJH48


Photo by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