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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보완계획48

예술가의 시대를 이끌던 아스날은 어디에

2012년 축구계의 트렌드를 간단하게 범주화시켜보자. 우선은 예술가가 있다. 스페인과 FC 바르셀로나는 그들만의 철학적, 미학적 가치를 앞세워 예술가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그 반대로는 전사들이 있다. 시대가 공격수에게 다재다능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골잡이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가의 시대에서도 전사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첼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사들은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훈련된 전사들이 있다. 스페인 클럽이면서도 잉글랜드 클럽의 냄새가 강했던 아틀레틱 빌바오는 마르셀로 비엘사라는 예술가와의 만남으로 예술적인 전사들로 변신했다. 독일에는 도르트문트가 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보라. 그들은 예술가의 볼 점유율 사랑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기꺼이 볼 점유율을 내주고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활동량과 잘 정비된 부분전술, 번뜩이는 창의성을 곁들여 미학적으로 완벽한 역습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은 돈이다. 돈은 플레이 스타일에 따른 범주화를 집어 삼키고 있다. 돈이 곧 권력인 시대인 것이다. 우승 트로피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일부 클럽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나, 돈의 힘은 그 반란이 길게 이어지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 더불어 맨체스터 시티는 돈의 힘으로 우승은 물론 현대적인 클럽운영의 모범이 되려 한다. 






예술가의 시대를 이끌던 아스날은 어디에



한 편으론 이런 범주화에서 아주 애매한 상황에 처한 클럽도 있다.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이 그렇다. 예술가의 시대를 이끌던 아스날은 이제 없다. 꾸준히 전사의 부재를 지적받고 있으며 예술적으로 훈련된 젊은 선수들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돈이 곧 권력인 시대에서 반역자를 자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왜 아스날이 고난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다. 아르센 벵거가 타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데이비드 시먼의 은퇴 이후 8년 동안 아스날이 충분한 역량을 갖춘 골키퍼를 보유한 적이 있었던가? 이는 간단하면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훌륭한 골키퍼가 없으면 훌륭한 축구도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르센 벵거는 매우 비상식적인 이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쓰는 데만 그치지 않고 영리하게 쓰려는 맨체스터 시티와 같은 클럽의 존재는 아스날의 입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모든 클럽들이 영입만큼이나 환경개선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선수의 가치를 분석하는 데이터가 보편화되면서 영입 쟁탈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도 없게 되었다. 마루앙 샤막, 안드레 산토스, 박주영 등 최근 1~2년 사이에 영입한 선수들 대부분이 실패했다는 점은 가볍게 넘어갈 만한 문제가 아니다. 거론되지 않는 몇 몇 선수들 또한 실패한 영입사례에 합류할 준비를 마쳤다.



쳄피언스리그 진출이 곧 우승 트로피, 진심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곧 우승과도 같다는 아르센 벵거의 발언은 지나치게 솔직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아스날 팬들이 품고 있는 분노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외면하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선은 패배로 끝난 스완지전의 경기력이 이번 시즌의 평균치에 가깝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5분 가량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가던 관중들의 모습이 이를 반증한다. 지금의 아스날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시즌 초중반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홈 경기에서 급조된 제로톱을 써야 하는 현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그 제로톱의 기점이 되는 선수가 자신감을 잃어 특유의 리듬마저 사라진 제르비뉴였다. 교체로 투입된 올리비에 지루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더불어 수비는 늘 일관성이 없었고 미드필드는 벌써부터 체력적인 한계에 시달리고 있다.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완지전에서 선발로 나선 11명 중 4명이 클럽의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선수들, 즉 예술적으로 훈련된 젊은 전사들이었다. 그것도 슈체즈니를 제외한 3명(깁스, 젠킨슨, 윌셔)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아스날의 장기적인 방향성 설정은 팬들의 요구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감을 줄 수 있는 피치 위의 리더가 필요하다.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과 새로운 스폰서 계약으로 확보한 자금은 이러한 리더를 영입하는 데 써야한다. 이것은 타협도 아니고 지쳐버린 팬들의 비상식적인 요구도 아니다. 아스날이 아스날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예술가로의 회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위한 동력, 이 모든 것들이 겨울이적시장에서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이마저도 외면한다면 아르센 벵거는 실패한 영입사례 목록에 들어간 선수들과 함께 아스날을 떠나야 할 것이다. 아스날의 가장 큰 문제는 매년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 




Text by BJH48



Photo by 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