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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보완계획48

프란델리 칼치오, 아주리의 새로운 시작



잉글랜드와의 승부차기에서 나온 피를로의 칩샷, 이른바 '파넨카킥'은 그 순간의 시간과 공기의 흐름, 나아가 몬톨리보의 실축으로 기울어진 승부의 향방까지 바꿔버렸다. 이 놀라운 침착함으로 이탈리아가 얻은 것이 4강 진출이 전부일까? 피를로의 침착함과 부폰의 완벽한 방어는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처참한 실패로 땅에 떨어진 칼치오의 위상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프란델리 감독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전형적인 카테나치오의 답습을 거부한 그는 유벤투스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면서 조직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패스게임이 주체가 된 플레이 모델을 제시했다. 즉 카테나치오의 계보를 이를 만한 대형 수비수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공백을 칼치오의 테크니션들로 메운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칼치오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프란델리 칼치오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칼치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전통적인 4-4-2에 맞선 4-3-1-2는 과거 안첼로티가 축적한 전술적 노하우가 바탕이었다. 스페인과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선보인 3-5-2는 지난 시즌 세리에가 발견한 잠재력에서 시작됐다. 바로 완벽하게 부활한 피를로, 중앙 수비수로써의 자질을 보여준 데 로시, 챔피언 유벤투스의 3-5-2 시스템이다.


독일전은 프란델리 칼치오의 하이라이트였다. 피를로와 데 로시가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한 편, 조밀한 간격과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역습의 속도를 살렸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리드를 잡은 프란델리 칼치오가 더욱 능동적으로 경기를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결국엔 수비적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카테나치오 DNA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1) 디아만티 투입으로 미드필드를 두텁게 구성하고 (2) 체력적 한계에 도달한 몬톨리보를 티아고 모따로 교체하여 운동량을 보강한다 (3) 다급해진 독일이 공격 일변도로 나올 것이기에 역습의 명수, 디 나탈레를 투입하는 시나리오는 완벽에 가까웠다. 카사노의 창의성과 발로텔리의 의외성이 동시에 터지면서 프란델리 칼치오에 오리지널리티가 추가된 것은 보너스였다.


적어도 이번 유로만큼은 '빗장'을 잊어도 좋다. 칼치오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뒤로 물러서서 1골을 지키기 보단 '컴팩트함'에 승부를 건다. 이를 가능케 하는 프란델리 감독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 피를로가 재현하는 판타지, 발로텔리의 헌신이 돋보이는 응집력까지. 프란델리 칼치오는 이탈리아 축구를 사랑하는 칼치오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선사하고 있다.



Text by 배정훈


Photo by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