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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Game

니폼니쉬 감독이 함께한 부천의 K리그 챌린지 개막전

1990년 월드컵 개막전은 지금까지 돌아본 월드컵 개막전 중 '경악을 선사한' 개막전 중에서도 첫손 꼽는 개막전입니다. 카메룬의 '굽히지 않는 사자들'은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몰아붙인 끝에 오맘 빅의 헤딩 결승골로 '축구의 신' 마라도나가 버틴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키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팀을 지휘한 러시아 출신의 감독 발레리 니폼니아치 (흔히 니폼니쉬라 불립니다)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94년 10월 유공팀의 감독으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유공은 해를 넘겨 1995년 부천을 연고지로 하겠다고 선언하며 '부천 유공'으로 팀명을 변경합니다. 당시 부천에는 프로축구를 할만한 경기장이 없었기 때문에 2001년 부천 공설운동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서울 목동경기장에서 홈경기를 치룹니다. 이 '목동시대'의 대부분을 맡았던 감독님이 바로 니폼니쉬 감독님입니다.

1995년부터 K리그에 센세이셔널을 가져온 '니포축구'는 그동안 '뻥축구'라는 말로 대변되던 한국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습니다. 미드필드의 다양한 운영과 패스축구, 선수의 기술을 중시하는 축구를 선보인 부천 유공의 이러한 행보는 K리그의 감독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김호 감독의 경우는 부천과 경기를 하면 니포감독과 축구 이야기를 하려고 부천의 라커를 들르곤 했습니다.

선수들뿐 아니라 서포터들에게도 니포 감독은 경외의 존재였습니다. 하프타임 때마다 경기장 잔디를 밟으며 가로질러가던 타 팀 감독과는 다르게 트랙을 따라 걸으며 잔디를 피하는 그분의 동선에 관심을 가진 서포터들의 질문에 그분은 "그라운드는 선수들의 것이다. 나는 선수들의 성스러운 그라운드를 구둣발로 짓뭉갤수는 없다"라며 기나긴 트랙을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경외의 모습이었습니다.

부천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해 니포 감독의 재임기간동안에 우승 경력은 컵대회 우승 한번이 전부입니다. 심지어는 리그 꼴찌까지 해 봤습니다. 이쯤되면 웬만한 서포터나 팬들로부터는 '저거 감독 뭐하는거냐?' '감독 바꿔라!' 부터 시작해서 경기장 출입문 막고 '감독과의 대화'를 시도한다던가 하는 사건으로 도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니포 감독의 재임기간동안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감독과의 대화'라 봐야 선수들 퇴장하는 출입구를 막고 '감독님 열심히 해 주셨습니다' 라는 격려의 말 뿐이었고 조금이라도 격한 말이 나오는 팬들을 향해 서포터들이나 열성팬들은 '뭐야? 당신이 감히 니포 감독님을 욕해?' 하며 니포 감독님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한 사람을 나무라거나 감독을 옹호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지원이 부족한 프런트에 대해 욕을 하고 해도 감독에 대해서는 욕을 안한 거의 유일한 사례였을 것입니다. 이게 서포터 초창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서포터들이 존경을 바치게 했던 그런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러시아 신사'였던 분이 니포 감독님입니다.

그리고 부천이 챌린지 리그에 있을 때에도 서포터 구성원이 많이 바뀌고 했다지만 부천의 서포터 '헤르메스'는 응원용 깃발 중 하나에 니폼니쉬 감독님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K리그 챌린지 부천의 개막전에도 그 깃발은 세월을 간직한 채 이번에도 휘날렸습니다.



[좌측 상단의 대형 응원깃발에 있는 니폼니쉬 감독님의 이미지.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부천 서포터 헤르메스. 감독님은 부천 팀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 사진으로 감상이 가능합니다. - 사진 Blue Hole 님]




이날 당일 경기장에는 동대문-목동시대때의 초창기 서포터분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저도 그중 한명입니다.

붉은악마의 3대 회장인 한홍구님도 오셨고, 당시는 막내였던...지금은 KBS에서 스페인리그를 해설하는 박찬하 해설위원도 오래전에는 목동에서 서포터로 활동했던 분입니다. 서포터 키드입니다. 박찬하 해설위원도 이날 부천 경기장을 찾아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목동시대'를 기억하는 분들이 오셨고 감회에 젖었습니다.

사실 니폼니쉬 감독님은 부천 공설운동장에서 지휘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부천 공설운동장이 완공되기 전에 부천의 감독을 그만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부천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포항에 가면 '포항축구의 대부' 아니 '한국축구의 열렬한 서포터중 하나'로 영원히 기억될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님의 이미지가 그려진 깃발을 볼 수 있습니다. 박태준이라는 분과 동시대를 살아오지 않은 서포터라 해도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이 포항축구에 끼친 영향을 들으며 성장하는 '전통'이 되었습니다. 부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천 운동장에는 발을 디뎌본적도 없는 니폼니쉬 감독님이지만 '부천축구의 시조'로 꼽힐만한 그분의 깃발을 보며 그분의 이야기와 그분이 K리그와 부천구단에 끼친 영향을 들어가며 새로운 세대들은 부천을 기억할 것입니다.


K리그의 30년에서 이제 전통다운 전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팀들이 생겼습니다. 다시 돌아온 부천. 오늘 분명 니폼니쉬 감독님은 부천에 함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계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