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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권료 특집 ① - EPL vs 세리에A

지난 10월 26일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뚜또 스포르트 (Tutto sport)에서 2012-13 시즌 세리에A 중계권료에 대한 기사를 하나 냈습니다. 2011-11시즌부터 리그 단체 TV 중계권 계약을 맺어 온 세리에A 모델에 대한 내용들이야 그간 자료가 어느 정도 나온 상태였으나, 최신 자료를 가지고 이렇게 자세한 기사가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요.


마침 EPL도 새 중계권료 계약에 대한 재계약이 진행 중이고 하니 두 리그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일전에 라 리가 중계권 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한 바 있으나 세리에A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특히 두 리그는 자국 내 TV 중계권료에 있어 유럽 1,2위를 다투는 엇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으니, 좋은 비교 대상이 되겠다 싶습니다.

 

 

1. 세리에 A 모델

 

2012-13시즌 세리에A TV 중계권료 분배 구조입니다.

 

먼저 전체 중계권료 중 40%가 각 팀에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다음으로 전체 중 25%가 서포터 지표(supporter index)에 따라 배분됩니다. 세리에A 모델에서 가장 특징적이면서도, 가장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죠. 서포터 숫자를 어떻게 알 수 있나? 리서치 회사 세 곳에서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응원하는 팀이 어디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료가 작성된다고 합니다. 조사 표본이 이태리 인구 6천만 중 3천8백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국민 선호도 조사에 가까운 방식입니다. 집계 방식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미디어 노출이 큰 일부 빅클럽에 지극히 유리한 방식이라 일각에서는 어차피 "공공연한 비밀" 아니냐며 비판하기도 하죠.

 

다음으로 전체 중 5%가 인구 지표에 따라 배분됩니다. 말 그대로 팀 연고지 인구수에 비례해서 중계권료를 주겠다는 겁니다. 다만 행정구역 상 하위 개념인 마을(Comuni) 기준이 아니라, 시나 군(Provicia) 기준이기 때문에 대도시에 위치한 팀에 지극히 유리한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유벤투스와 같이 토리노 시에 위치한 토리노가 이런 이점을 누리고 있지요.

 

또 전체 중 5%가 직전 시즌 성적에 따라 배분됩니다. 2012-13시즌 중계권료 5%는 2011-12시즌 성적에 따라 차등분배된다는 말이지요. 우승팀 유벤투스가 3.6m, 세리에B에서 3위로 승격한 삼프도리아가 0.2m을 수령합니다.

 

그리고 15%는 직전 5시즌 성적을 합산해 배분합니다. 한 시즌 깜짝 활약하는 팀보다 꾸준히 잘하는 팀이 유리한 구조이겠죠.

 

마지막으로 10%가 역대 성적을 계산하여 배분됩니다. 리그 출범 때부터 따지는 건 아니고 최초로 20개 팀 리그 방식이 적용된 1946-47시즌부터 현재까지 성적을 합산해 반영합니다.

 

자, 그럼 EPL과 비교를 위해 파운드로 환산해 보겠습니다.

 

 

2. EPL 모델

 

2011-12시즌 EPL TV 중계권료 분배 구조입니다. (EPL은 직전 시즌이 아니라 해당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이번 시즌 분배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40%에 달하는 해외 중계권료가 각 팀에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다음으로 국내 중계권료의 절반, 전체 중계권료로 따졌을 때는 30%에 해당하는 금액이 각 팀에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그리고 국내 중계권료의 25%, 전체 중계권료로 따졌을 경우 15%에 해당하는 금액이 라이브로 중계된 경기 숫자에 따라 지불됩니다. 위 표를 보면 가장 많은 26경기가 라이브 중계된 맨유가 13.43m, 가장 적은 10경기가 중계된 팀들이 5.78m을 받은 걸 알 수 있죠.

 

마지막으로 해당 시즌 성적에 따라 국내 중계권료의 25%, 즉 전체 중계권료의 15%가 차등 배분됩니다. 우승팀 맨체스터 시티가 15.10m, 20위팀 울브스가 0.76m을 받았으니 순위 하나에 따른 차액은 1m이 안된다는 걸 알 수 있죠.


 

 

3. 세리에A vs EPL

 

두 리그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세리에A 상위 3팀인 유벤투스, 인테르, AC밀란은 EPL 상위팀보다 10~20m 파운드 가까이 많은 금액을 중계권료로 받고 있습니다. 반면 라치오 이하 15개 팀은 같은 순위 EPL에 비해 10~20m 파운드 가까이 적은 금액을 중계권료로 받고 있지요.

 

표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래 차트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전에 라 리가 중계권료에 대해 다루면서 EPL 방식과 라 리가 방식을 비교했더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EPL은 너무 평등한 방식이다", "중계권 파이가 EPL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방식은 불가능하다", "일단 중계권료 파이를 키워야 EPL 방식으로 갈 수 있다" 등등등.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 아닙니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두 리그를 서로의 방식으로 바꿔서 중계권료를 배분하면 어떻게 될까요?


 

 

4. 세리에A 모델을 적용했을 경우 EPL

 

리그 중계권료 총합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세리에A 방식으로 중계권료를 배분해 보았습니다.

 

서포터 지표는 제가 잉글랜드 전 국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니 나름의 계산으로 숫자를 채워 보았습니다.

 

인구 지표는 도시 인구 기준이기 때문에 런던 팀들이 유리한 모습니다.

 

직전 시즌과 5시즌 성적, 역대 성적은 기존 자료가 있으니 토대로 계산하였습니다.

 

우측에 원래 EPL 방식과 금액 차이를 비교했습니다. 세리에A 방식을 적용할 경우 맨유/아스날/첼시/리버풀/아스톤 빌라/토트넘/에버튼/뉴카슬 등이 이득을 보는 것으로 나타나네요. 좋은 연고지를 바탕으로 전통과 최근 성적 모두 양호하며 서포터층 역시 두터운 팀들이라고 해야겠죠? 반면 시티를 비롯해 나머지 12팀은 세리에A 방식이 될 경우 손해를 보는 팀들입니다. 특히 역사가 부족한 소규모 팀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즌에 호성적을 보인 스완지와 노리치 두 팀이 가장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5. EPL 모델을 적용했을 경우 세리에A

이번에는 반대로 세리에A 중계권료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EPL 방식으로 배분해 보았습니다.

 

먼저 해외 중계권료를 따로 떼내어 균등하게 배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체 중계권료 40%를 또 균등하게 배분했습니다.

 

남은 중계권료 48% 중 절반은 라이브로 중계된 경기에 따라, 그리고 마지막 절반은 지난 시즌 리그 순위에 따라 배분했습니다.

 

EPL 방식을 세리에A에 적용하면 유벤투스, 인테르, AC 밀란 세 팀은 20~30m 파운드 정도를 손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팀 규모에 비해 호성적을 기록했던 우디네세(3위), 키에보(10위), 파르마(8위), 시에나(14위), 볼로냐(9위), 카타니아(11위) 등은 EPL 방식에서 이득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그 전체적으로 봐도 유베/인테르/밀란/로마/나폴리 5개 팀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팀이 EPL 방식에서 이득을 보게 되지요.


 

그러니 어떻습니까? 지금은 파이가 적으니 보다 평등한 분배를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누구를 위한 논리인지 쉽게 알 수 있죠?


 

 

6. 당신이 축구 구단주라면?

 

제가 요새 축구 구단주들에 대해 살펴보고 있으니, 이번에는 구단주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사업이 대박나서 여윳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는 돈으로 축구 구단을 사고 싶어요. 물론 무작정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으니 투자 대상으로 매력적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겠죠. 당신이 그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위 자료를 보고 어느 리그 팀을 선택하겠습니까?

 

한 시즌 열심히 이적료와 주급에 투자해 성적을 상승시켜도 TV 중계권료에 반영되는 비율은 고작 5%, 5년을 열심히 투자해도 고작 15%만 TV 중계료에 반영되는 리그. 10%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역대 성적에 의해 결정되며, 5% 역시 내가 손쓸 수 없는 도시 인구수에 따라 결정되는 리그. 거기다 25%는 누가, 어떻게 집계하는지도 알 수 없는 서포터 지표에 의해 결정되는 리그가 있습니다.

 

다른 한 쪽에는 70%에 해당하는 중계권료가 잘하든, 못하든 균등하게 분배되는 리그가 있습니다. 15%는 내가 한 시즌 돈 투자해서 성적내면 즉각 TV 중계권료에 반영되며, 나머지 15%도 돈 좀 투자하고 마케팅도 좀 하면 늘릴 수 있는 라이브 중계 경기수에 따라 결정되는 리그입니다.


 

EPL에는 외국인 구단주가 11명 이나 되고, 또 투자를 목적으로 한 구단주들이 많을까요? 왜 세리에A에는 외국인 구단주가 한 명에 불과하고, 투자를 목적으로 한 구단주보다 지역 기반의 구단주가 많은 걸까요?

 

내 투자에 대해 다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TV 중계권료 구조가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