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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L 구단주 열전(1) - 알라니야/모르도바/볼가/로스토프/크릴리야/테렉

유럽 각국 축구 리그를 살펴 볼 때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아마 몇 가지가 떠오를 겁니다. 축구 내적으로는 UEFA 에서 계산하는 각국 리그 유럽 대회 성적이 있겠고, 축구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각 리그 총매출이나 총관중수 등을 따질 수 있겠죠.

 

그렇다면 각종 언론에서 유럽 '빅 파이브' 리그로 언급되는 EPL / 라 리가 / 분데스 리가 / 세리에A / 리그 앙 다음으로는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요? 축구 성적으로는 세리에A, 리그 앙과 함께 유럽 네 번째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포르투갈이 있겠죠. 리그 매출로는 리그 앙 다음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가 있겠습니다.

 

저도 애매했던지라 제 트위터 에서 리그 앙 다음으로 어디를 다루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는데, 러시아가 궁금하다는 분이 조금 많더군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는 각 팀들이 어떤 소유 구조를 가지는 있는가, 줄여서 RPL 구단주 열전.

 

총 16개 팀이니 세 번에 나누어서 다룰 예정입니다. 순서는 늘 그렇듯이 지난 시즌 순위 역순입니다.


 

2012-13시즌 축구 구단주 열전

(1) 웨스트햄/사우스햄튼/레딩/QPR/아스톤 빌라
(2) 위건/스토크/선더랜드/노리치/스완지
(3) WBA/풀럼/리버풀/에버튼/첼시
(4) 뉴카슬/토트넘/아스날/맨유/맨체스터 시티
(5) 삼프도리아/토리노/페스카라/제노아/팔레르모
(6) 칼리아리/시에나/피오렌티나/아탈란타/카타니아
(7) 키에보/볼로냐/파르마/로마/인테르
(8) 나폴리/라치오/우디네세/밀란/유베
(9) 트루아/랭스/바스티아/로리앙/아작시오
(10) 브레스투와/소쇼/니스/발랑시엔/낭시
(11) 마르세유/에비앙/툴루즈/생테티엔/렌
(12) 보르도/리옹/릴/PSG/몽펠리에
(13) 알라니야/모르도바/볼가/로스토프/크릴리야 소베토프/테렉


 

 

1.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 공화국의 축구전통, 부활을 꿈꾸다

 

소유 구단: 알라니야 블라디캅카스
주 업종: 공화국

좌: 가자예프, 우: 맘수로프

 

2011년 1월 11일 세베로오세티아 공화국 정부청사에서 타이무라즈 맘수로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화국의 자랑 FC 알라니야 블라디캅카스 회장에 발레리 가자예프를 임명한다고 발표합니다. 맘수로프 대통령은 말합니다. "공화국 전체가 기다려 온 일이다. 가자예프를 회장으로 데려오기 위해 2-3년을 노력했다." 가자예프 역시 기자회견장에서 포부를 밝힙니다 "오세티아 축구가 가졌던 영광스런 순간들을 부활시키겠습니다. 최우선 과제는 RPL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클럽의 구조 역시 혁신하겠습니다."

 

공화국 수도 블라디캅카스에서 태어나, 알라니야(당시 이름 스파르타크 오르조니키제) 유스 출신으로 축구에 데뷔하였고, 선수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1995년 알라니야 역사상 유일한 1부 리그 우승을 경험하였던 영웅이 클럽 회장으로 고향에 돌아온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놀라운 인선은 아니었습니다. 클럽에는 발레리 가자예프의 아들 블라디미르 가자예프가 이미 코치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발레리가 회장에 선임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 블라디미르를 감독으로 승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12 시즌, 춘추제를 추춘제로 바꾸느라 2011년 3월에 시작해 2012년 5월에 종료된 기나긴 시즌에 회장 발레리 가자예프와 초짜 감독 블라디미르 가자예프는 팀을 RPL로 승격시킵니다.


 

 

2. 모르도바 공화국 - 모든 것을 바꾼 2018 월드컵 유치

 

소유 구단: 모르도바 사란스크
주 업종: 공화국

 

2010년 12월 2일 스위스에서 열린 FIFA 이사회에서 러시아가 2018년 월드컵 개최국에 선정됩니다. 이 소식에 가장 기뻐했을 도시는 바로 사란스크였죠. 러시아가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선정한 13개 개최 도시 중 가장 작은 규모의 사란스크. 축구보다는 오히려 경보로 유명 한 이 도시는 다분히 정치적 안배였던 월드컵 개최 도시 선정 이후 꾸준히 축구 인프라에 투자를 해왔습니다. 사란스크 시내에 있는 축구장에는 연평균 5천명이 안되는 관중이 들고 있는 상태였으나, 월드컵 개최를 위해 3만석(확장 시 4만4천석까지 수용 가능) 최신식 스타디움이 건설됩니다. 단 한 번도 러시아 리그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축구팀 모르도바 사란스크에도 계속된 투자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2011-12시즌 모르도바는 투자에 보답하듯 세 시즌 연속 승격(2009 시즌 4부 리그에 있던 팀), 그리고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RPL로 승격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모르도바 공화국 초대 대통령 니콜라이 메르쿠슈킨 때부터 시작된 모르도바 사란스크에 대한 지원은 올해 5월 블라디미르 볼코프가 2대 대통령에 선출된 뒤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모르도바 사란스크 회장 니콜라이 레빈이 정치가인 것처럼 기술되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치가 니콜라이 레빈은 카렐리아 공화국에서 활동하는 동명이인일 뿐이며, 현 회장 니콜라이 레빈은 축구 선수 출신이죠. 레빈 회장이 시즌 시작 전 각오를 밝혔던 인터뷰는 이 링크 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3. 니즈니 노브고로드 공화국 - 사기극인가, 권력싸움인가

 

소유 구단: 볼가 니즈니 노브고로드
주 업종: 공화국

 

2008년 니즈니 노브고로드 공화국 대통령은 푸틴의 통합러시아당 소속으로 시의회에서 활동 중이었던 알렉세이 가이크만을 볼가 니즈니 노브고로드 회장으로 임명합니다. 공화국 내에서 가장 큰 자동차 딜러상 아들로 태어나 운송사를 창업해 활동하던 가이크만은 공화국의 지원 아래 축구팀 볼가를 발전시키겠다 다짐하였죠. 그러나 2011년 7월 가이크만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이들의 만남은 끝을 맺고 맙니다.

 

가이크만 회장 아래에서 볼가는 3부에서 2부, 2부에서 1부 리그 승격을 기록했으나, 팀은 계속된 재정난에 시달리며 선수들 주급마저 지불하지 못할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공화국은 가이크만 회장이 사임한 후 30대 후반 젊은 나이의 세르게이 아니시모프를 새 회장으로 임명하며 변화를 모색했죠.

 

아니시모프 회장은 말합니다. 회장 부임 후 가이크만 전 회장이 스폰서라고 구단 사옥에 모셔다 놓은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니 사람 한 명, 서류 한 장 볼 수 없는 빈 방이었다고. 클럽이 너무나도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했다고. 가이크만 전 회장은 말합니다. 자신은 재정난 해결을 위해 스폰서를 열심히 물색하고 있었고 성사 단계인 계약이 몇 건이나 있었는데 공화국에서 자신을 신임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스스로 물러났다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겠으나, 이것 하나만은 알아 두시길. 아니시모프가 이런 스폰서 기업도 있냐며 빈 방에서 쫒아낸 기업은 무단 계약 파기라며 러시아 법원에 축구 클럽 볼가를 파산시켜 달라 고소했고, 올해 10월 초 판결에서 이 요청은 기각되었다는 사실.


 

 

4. 로스토프 주 - 주 정부, 직접 나서다

 

소유 구단: 로스토프
주 업종: 주 정부

 

2018 러시아 월드컵 개최 도시 자격을 유치한 지역 중 가장 체계적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곳을 꼽자면 바로 로스토프 주와 그 주도 로스토프나도누가 아닐까 싶습니다. 러시아 지방 자치 정부 최초로 투자청(IPA, Investment Promotion Agency)을 2004년에 세웠고 이 기관을 통해 각종 지역 개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로스토프 주입니다. 코카콜라 등 각종 다국적기업 공장을 유치하는가 하면, 세계 여성 체스 대회 등의 개최를 통해 지역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죠. 로스토프 IPA는 2012년 현재 총 69개 투자 프로젝트, 자금 규모로는 $ 7 billion에 달하는 투자를 이끌어내며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올해 4월 FIFA 위원회에서 로스토프 지역을 방문했을 때도 주정부에서는 IPA를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IPA 측에서 직접 준비한 발표를 통해 로스토프 지역 내 도로 개발 사업, 공항 건설, 5성 호텔 신축 등 인프라에 대한 계획, 그리고 4만5천석 경기장 건설에 대한 내용 등을 홍보하였죠. 성공적인 발표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로스토프는 러시아 정부에서 추린 월드컵 개최 도시에 최종 선정되며 지역 개발에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스토프 주는 IPA와 연계하여 축구클럽 로스토프에 대한 투자도 과감합니다. 세르게이 고르반 부지사가 2011년부터 직접 로스토프 회장에 나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올해 여름에는 토트넘에서 데이빗 벤틀리를 임대하는가 하면, 리버풀 출신 시나마 퐁골레를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5. 사마라 주 - 잘못된 행정의 대가

 

소유 구단: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주 업종: 주 정부

 

러시아 알루미늄 재벌 올레크 데리파스카의 투자 회사 Basic element 에서 부회장으로 일하던 게르만 카첸코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축구클럽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가 적절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자 2007년 이를 사마라 주정부에 넘겨 버립니다. 사마라 주정부의 지휘 아래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는 의욕적인 투자에 나서며 비-모스크바 클럽의 자존심을 1부 리그에 떨치고자 하였죠. 그러나 곧 이 모든 일들이 잘못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나타납니다. 얀 콜러, 이리 야로식 등을 필두로 크릴리야 선수들은 구단이 약속한 주급과 보너스를 지불하지 못했다며 불만 끝에 팀을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2010년이 되자 클럽이 100m 유로에 가까운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RFU로부터 강제로 강등 조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참다 못한 크릴리야 서포터들은 피켓을 들고 나와 사마라 주지사 블라디미르 아르티아코프의 해명과 사임을 소리쳐 주장했죠.

 

사태를 보다못한 푸틴 대통령은 이고르 세친 부총리를 불러 "오랜 축구 전통과 함께 RPL 출범 후 단 한 번도 강등이 없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크릴리야 소베토프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니 이를 해결할 기업 스폰서나 잠재적인 투자자를 조속히 찾으라" 고 주문합니다. 당시 푸틴과 세친의 대화는 공개된 러시아 정부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죠.

 

하여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가 까고 보니 이랬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주 정부를 대신해 크릴리야 소베토프를 후원한다는 사마라 주 산하 기업 "Russian Technologies State Corporation"에서는 조건없는 지원이 아니라 자사 소유의 Novikombank 를 통해 대출을 해주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2008년부터 클럽이 이적시장에 뿌려 온 돈들이 전부 대출금이었다는 말이죠.

 

아무튼 푸틴의 명령이 있었기에 세친 부총리는 주지사 아르티아코프를 만나 크릴리야 소베토프를 지원하고 클럽의 일부 지분을 인수할 기업들을 나열합니다. 로스네프트, 트랜스네프트, 시부르 등등. 네, 러시아 정부 명령에 의해 즉각적으로 움질일 수 있는 국영기업들이었죠. 이 모든 것이 푸틴의 명령이 있고 단 이틀만에 벌어진 일이랍니다.


 

 

6.  체첸 공화국 - 변절자의 공포정치

 

소유 구단: 테렉 그로즈니
주 업종: 공화국

 

아버지 아흐마트 카디로프는 체첸 독립운동의 영웅 조하르 두다예프와 함께 1차 체첸 내전에서 싸운 동지였습니다. 그러나 체첸 반군 내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의견이 갈렸고, 2차 체첸 내전 무렵에 아흐마트 카디로프는 러시아에 협력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체첸 공화국 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던 아흐마트 카디로프는 임기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체첸 반군의 테러에 목숨을 잃었죠. 아버지와 함께 체첸 독립을 위해 싸웠음에도 아버지를 따라 친러파가 된 아들 람잔 카디로프는 이제 체첸 반군을 아버지의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7년 만 30세 나이로 러시아 연방 내 자치 공화국 최연소 대통령(1976년생)이 된 람잔 카디로프는 "러시아를 위해, 러시아와 함께, 러시아의 체첸"을 내세우며 친러 성향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체첸 반군에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족들에 대해서는 보복 행위도 불사하며 무력에 의한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죠. 덕분에 체첸 반군들의 암살 일순위에 올라 끊임없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은 작년 11월까지 축구 클럽 테렉 그로즈니의 회장이었습니다. 현재는 카디로프와 함께 체첸 독립군 출신에서 친러파로 전향한 체첸 부통령 마고메드 다우도프가 테렉 회장직에 올라 있죠. 체첸 공화국에게 있어 테렉 그로즈니는 공화국의 안정을 홍보하는 수단입니다.

 

작년 초에는 루드 굴리트를 감독으로 임명해 대외 이미지 개선을 시도했으나 반 년만에 좋지 않은 결과와 함께 경질하기도 했죠. 올해 초에는 도르트문트와 사라고사에서 뛰었던 에웨르톤이 2011년 잠깐 머물렀던 테렉 그로즈니 시절을 끔찍했다며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회장은 불쑥불쑥 드레싱 룸으로 들어와 감독에게 참견을 해댔고, 어느 코치는 선수들 보는 앞에서 모 선수 싸대기를 날려 댔기에 여기는 도저히 있을 곳이 아니라 생각했었다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