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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안정환 그를 추억하며 - 2


by 홍차도둑

아마 많은 여러 '안정환을 추억하는 글'에서 당시 3인방으로 '고종수, 이동국, 안정환'을 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난 고종수 대신에 김은중을 넣었다. 사실 이건 데뷔시기및 고종수는 좀 다르게 봐야 할 필요가 있어서 분류를 따로 한 것이기도 했다. 고종수는 이때에도 잘 보면 부침을 겪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안정환-이동국-김은중이라는 '전방공격수'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니까.
(물론 명성이라던가 기타 부분에서 김은중이 뒤지는 부분이 있음은 인정해야한다)

[2005/11/16 세르비아전에서. 안정환 팬클럽의 걸개에 맞춰서 플레이하는 순간에 촬영. 촬영자 홍차도둑.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3. 긴머리의 테크니션
여러 팬들의 글을 보면서 아쉽기도 하고 한 부분은 안정환을 놓고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말을 너무 단적으로 한 부분이라 하겠다.
사실 안정환 이전에 안정환을 능가하는 테크니션들이 대한민국에는 있었다.
최순호라는 한국축구의 거물도 있고 최문식이라는 진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도 있었다. 대학시절 부상으로 사라진 천재 '김병수'도 당대에 같이 뛰어본 선수들 입에서는 '평생에 그렇게 축구를 하는 사람은 못봤다. 지금까지도'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물론 그들은 월드컵 4강에 올라선 적은 없다.
뭐 비슷한 예로 지단을 플라티니보다 높게 치는 것이 그런 '성적'이니 말이다.
아 거기에 하나 더 있다면 지금보다 더 중계가 없어서 그들의 경기장에서의 플레이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구하게 되는 그런 모습들을 본다면 안정환을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자리매김을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이야 한숨 나오는 것이지만...다시 안정환으로 시점을 옮겨보자.

여하간 안정환의 그런 '테그니션'적인 부분은 입단하자마자 바로 주전, 그것도 공격 일선에서의 활약을 하게 했다. 부산의 경기에서는 일단 안정환에게 카메라가 맞춰졌으며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했다. 여름까지는 말이다.

안정환이 보여준 한박자 빠른 슈팅과 다른 선수들이 잘 안쓰던 기술들은 수비수들을 혼란시켰다. 그가 방송경기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에 의한 극적인 승리 등은 비주얼적인 면에서 분명 한단계 위의 그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여름까지는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을 놓고 본다면 당시 아주대 감독이었던 김희태 감독이 추구하던 축구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한다. 당시 연-고대라는 트랜드에 비교하여 괄목할만한 선수들을 많이 만들어 낸 분들이 한양대, 아주대, 건국대 라 하겠다. 특히 건국대의 최종덕 감독의 '고정운 프로젝트'는 정말 대단한 거였다. 선수 한명을 정말 장기 계획으로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스피드메이커의 원투펀치 라는 한국적인 '전통적인 한국형 스트라이커 개념'을 최고조로 발전시킨 것이 건국대였고 '사실상 프로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로 전술소화력을 높여준 김희태 감독의 아주대는 정말 '아는 사람들은 일부러 학교 찾아가고 일부러 경기 찾아가서 보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안정환의 그런 활약은 '지극히도 당연한' 거였다.
그렇기에 안정환의 '비주얼적인 면의 부각'은 그렇게 경기를 즐기는 사람에게 있어선 불안으로 다가오게 되고 그것은 현실이 된다.
이 부분이야말로 구단의 여러 부분이 부족한 부분이었다.

안정환 본인이 당시 회술한 것은 이것이었다.
"머리 긴 것도 부담이다. 경기력 자체에 영향을 끼친다"

왜 영향을 끼쳤냐고? 치렁치렁해서?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서? 그런 부분도 있었겠지만. 머리 자체의 무게가 체력 자체에 영향을 끼쳤다.
안정환 본인이 한 말이... "머리 무게 때문에 전반전만 끝나도 지친다"라고 했을 정도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치 마시라. 100g~200g 이란 무게가 아무리 가볍다고는 해도 장기전으로 갈 땐 얼마나 큰 부담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괜히 마라톤장비에서 유니폼을 몇그람이라도 얇게, 가볍게 만들려고 하고 마라톤화가 가벼우면서도 충격흡수 잘 하려고 별별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긴머리로 달려라'는 일차적인 발상은 여기서 문제를 가져온다.
안정환의 체력저하는 팀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부산은 당시 초유의 '시즌중 감독 사망'까지 겪었다. 그러한 팀내 불안 때문에 안정환과 부산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그라운드에서의 안정환의 활약은 1998 월드컵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동국과 당시부터 이미 주전자리를 넘어 리그 탑 미드필더라 봐도 과언이 아닌 고종수에 얽혀서 밀리는 듯 했다.


4.부산팬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부산에서 안정환의 인기라는 것은 부산 길거리의 패션 아이템을 바꿔버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TV연애인을 제외한' 최초의 '유행패션'을 몰고온 축구선수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배우 김희선이 곱창머리띠와 요요를 패션아이템으로 히트시켰다면 안정환도 '안정환머리띠'로 불리는 것을 히트시켰다.

머리를 '질끈' 묶은 것이 아니라 머리띠를 사용해서 묶은 그의 패션은 부산의 여고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부산에서 안정환이 사용하던 머리띠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춰 버리는, 아니 정확히는 매대에서 여학생들의 머리로 '위치이동'되는 초유의 사건을 일으켜버린다. 그야말로 '안정환 머리띠'는 당시 부산에서 '매대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 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안정환은 부산 시장상인연합회의 감사패를 증정받기까지 한다.
아마도 시장상인연합회의 감사패를 받은 한국의 프로스포츠 선수는 안정환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관련해서 구단에 여러 마케팅 방법 이야기를 구단 관계자들과 이야기 했었었는데...그게 실현되지 못한게 아쉽다...)

거기에 CF에 진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다.
그 페이스에 웬만한 연예인들이 어디 상대가 될까.
웬만한 얼짱들은 '훗'해버릴만한 그의 미모는...뭐...많이들 보셨으니 아실 것이다.
CF도 그냥 CF가 아니라 화장품 CF였걸랑. 상대역이 김재원이라는 미남배우였는데...그 광고 구해서 보시면 알걸? 김재원도 상당한 미남인데도 그냥 밀려버릴 정도의 '그리스 조각상' 그 자체발광되던 것이 안정환이었다.
얼마전까지 인기절정이던 현빈도 이전에 안정환과 같이 CF를 찍었다. 그리고 발렸다. 그 둘은 물론 잘 생긴 배우임에도 안정환의 미모를 받쳐주기만 했을 뿐이니 당시 광고사진 구해서 보신다면 그냥 입만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여러 연예인들이 어떡하던 안정환과 관계를 맺어보려고 별별 에피소드들이 난무한다. 모 가수는 자기의 CD를 보내면서 '혹시 인터뷰하게 되면 좋아하는 가수에 자기 이름을 이야기 해 달라고'까지 했...

그러한 상품성은 드디어 안정환을 세리에 A에 아시아 선수로는 4번째 진출선수로 만든다.
당시 국제경쟁력을 위해 축구협회는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지원하고 했는데 그 물결은 안정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부산의 모기업인 대우의 후원을 얻어 안정환을 세리에로 보낸다.

아시아 선수로는 네번째로 세리에 A에 엔트리를 올려놓게 되고 그의 보헤미안 인생이 시작된다.

- 3편으로...

여기서 문제 :
아시아 선수로 첫번째 세리에A 엔트리 진출은 일본의 미우라 가즈요시다.
세번째 선수는 그 유명한 나카다 히데토시이고 네번째가 안정환이다.
많은 분들은 두번째 선수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1-3-4호를 1-2-3으로 알고들 계신다. 그럼 두번째 선수는 누구일까? 맞추는 분에게는...음...뭘 선물로 드릴지 좀 고민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