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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렛퍼드 축구 글창고

코몰리vs로저스 혹은 리버풀의 머니볼

 

OPTA 데이터를 가지고 팀별로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리버풀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 코몰리식 머니볼 이해하기

 

톰/힉스 아래서 법정 관리 직전까지 몰렸던 리버풀을 구원한 인물은 존 헨리. 널리 알려져 있듯이 존 헨리 휘하에서 리버풀은 머니볼 철학에 의해 운영되기 시작했고, 현장 최일선에서 머니볼 철학을 진두지휘한 건 빌리 빈과의 친분으로도 유명한 코몰리였죠. 직전 시즌이었던 10-11시즌 부터 이미 통계를 활용해 수아레스 등을 영입했다고 밝혔던 코몰리는 11-12시즌에 앞서 어떤 식으로 팀빌딩을 해나갔을까요?

 

(1) 득점기회창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머니볼"을 보면 세이버매트릭스 신봉자 피터 브랜드가 빌리 빈에게 팀빌딩을 조언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피타고리안 승률 공식을 통해 한 시즌에 목표로 하는 승률 달성에 필요한 득점수를 구하고, 그만큼의 득점수를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출루율에 주목해 시장에서 출루율을 갖추었지만 저평가되고 있는 선수들을 모집하죠. (물론 피터 브랜드라는 가상인물이 아닌 폴 디포데스타가 관여한 오클랜드의 실제 팀빌딩은 영화보다 훨씬 복잡했을 겁니다)

코몰리 역시 리버풀에 대해 유사한 시도를 합니다. 축구에서 승점을 얻기 위해서는 득점을 해야 합니다. 그럼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득점 기회를 창출해야 겠죠. 그렇담 직전 시즌이었던 10-11시즌 리버풀의 득점 기회 창출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위 표에서 보듯 10-11시즌 리버풀은 자신들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맨유, 첼시, 시티, 아스날, 토트넘에 비해 (시티를 제외하면) 득점 기회 창출에 있어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첼시에 비해서는 100개 이상, 4위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아스날, 토트넘에 비해서도 50개 가량 뒤처지고 있었죠.

 

직전 시즌에 수아레스와 캐롤을 영입해 득점 기회를 마무리할 선수는 갖춰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영입의 방향을 득점 기회 창출이 우수한 선수로 잡아야 겠죠? 달글리쉬는 영국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고자 했으니 코몰리는 EPL 내 득점 기회 창출에 주목합니다.

 

위 표는 EPL 10-11시즌에 득점 기회 창출 순위 12위까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표를 보면 당시 리버풀이 왜 시장에서 다우닝, 헨더슨, 찰리 아담을 영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루다, 케빈 데이비스는 재판매 가치(resale value)를 중시하는 머니볼 철학에 걸맞지 않게 나이가 많으니 제외됩니다. 조이 바튼, 애쉴리 영, 세스크는 각각 QPR, 맨유, 바르셀로나로 이적했기에 역시 제외되죠. 남는 건 크리스 브런트와 다우닝, 헨더슨, 나니, 베인스, 다비드 실바, 찰리 아담 정도인데 맨유 소속인 나니, 에버튼 소속인 베인스, 시티 소속인 실바 역시 리버풀이 영입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죠. 그렇게 남은 브런트, 다우닝, 헨더슨, 아담 중에 코몰리의 관심을 눈치채고 알비온이 재빨리 재계약을 추진한 브런트가 제외되고 나머지 다우닝, 헨더슨, 아담이 최종 영입 자원으로 선택되었습니다.

 

(2) 크로스

 

물론 코몰리가 주목한 통계가 득점기회창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가디언에 익명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모 축구선수가 한 가지 재미난 발언을 한 적 있습니다. 코몰리의 머니볼 철학에서는 상대팀 대비 헤더를 40개 더 따내고, 크로스 30개를 더 생산하며 공격지역(final third) 볼탈취를 12회 더 해내는 팀이 거의 항상 승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리버풀에는 앤디 캐롤이라는, 자신의 득점 대부분을 헤더로 해내는 선수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건 이 선수에게 크로스를 날려줄 선수들이겠죠? 코몰리가 선택한 세 선수 다우닝, 헨더슨, 아담은 셋 모두 크로스 생산에 있어 강점을 보였던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셋과 10-11시즌 리버풀 내 선수들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선수단에서 정리된 선수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가 있죠

위 표에서 노란색이 2011년 여름 코몰리가 시장에서 영입한 선수들이고 초록이 코몰리가 방출한 선수들입니다. 크로스라는 지표에 있어 영입한 선수들이 방출된 선수들 대비 크로스 생산력에 있어 상당한 강점을 보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3) 맥락없는 통계의 실패?

 

이같이 이적 시장을 보낸 11-12시즌 리버풀은 코몰리가 중시했던 지표들에서 비약적인 상승을 보였습니다. 10-11시즌 400개가 채 못되던 득점기회창출은 11-12시즌 484개를 기록하며 100개 가까이 늘어났고, 10-11시즌 21.7개에 불과하던 경기당 크로스 숫자 역시 11-12시즌에는 29.2개로 경기당 8개 가까이 증가했죠. 허나 10-11시즌 59골에 달하던 팀득점은 11-12시즌 47골로 12골이나 줄었고 이에 따라 승점 역시 58점에서 52점으로 감소하며 팀순위는 6위에서 8위로 내려갔습니다

 

이를 두고 조나단 윌슨은 리버풀이 직전 시즌 대비 보다 많은 득점 기회들을 만들어 냈지만 실은 이 기회들이 손쉽게 득점할 수 있는 기회는 아닐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모든 통계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맥락(context) 하에 사용되어야 하며, 축구에서 이 맥락은 전술에 해당한다고. 코몰리가 크로스를 중시해 다우닝, 헨더슨, 아담 등을 영입했지만 약팀 소속으로 주로 역습 상황에서 정돈되지 않은 수비를 상대로 날리는 크로스와 리버풀처럼 대부분 경기에서 볼을 지배하는 강팀 소속으로 박스 앞에 진영을 갖춘 수비를 상대로 날리는 크로스는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혹자는 코몰리가 중시한 수치들이 리버풀의 패스앤무브 철학과 전혀 걸맞지 않았다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존 헨리는 리버풀의 머니볼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판단했습니다. 팀빌딩의 대부분을 진두지휘한 코몰리가 가장 먼저 해고되었고, 코몰리가 기획한 팀을 현장에서 지휘한 달글리쉬마저 팀을 떠나야 했죠.


2. 로저스 리버풀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머니볼 철학이 붕괴한 존 헨리에게는 그 빈자리를 채워줄 다른 철학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공략한 건 브랜든 로저스가 제출한 180페이지 짜리 서류였죠. 인내심(Patience), 점유율(Possession), 패싱(Passing), 침투(Penetration)라는 4P를 중시하는 로저스의 청사진은 자신이 믿고 있던 가치체계가 실패한 후 이를 대체할 또다른 가치체계가 절실히 필요했던 존 헨리의 공허함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담 승격팀 스완지에서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선보이던 브랜든 로저스 휘하에서 리버풀은 어떤 변화를 보였는가?

 

(1) 패싱

 

패싱과 점유율을 중시하는 감독의 팀답게 패스 관련 지표는 대다수가 지난 시즌보다 양호해 졌습니다. 경기당 패스 시도는 26.9개 증가했고 성공한 패스 역시 경기당 38.5개 늘어났죠. 덕분에 지난 시즌에도 괜찮았던 점유율(55.5)은 57.5%로 2% 더 늘어났고 시즌 패스성공율은 80.9%에서 84.2%로 올라갔습니다. 롱패스 시도는 경기당 8개 줄은 반면 숏패스 시도가 35개 가까이 늘어난 것이 이유 중 하나이겠죠. 반면 공격지역에서 시도하는 패스 숫자는 경기당 6.8개가 줄어들면서 전체 패스 중 공격지역 패스 비중이 33.9%에서 30.8%로 하락했죠. 이 역시 후방에서의 안정적인 볼돌리기를 중시하는 로저스의 성향과 일치하는 통계입니다.

 

(2) 공격과 수비

 

크로스를 상당히 중시하던 코몰리가 물러나자 로저스 휘하에서 크로스의 빈도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11-12시즌 경기당 29.2개에서 이번 시즌은 경기당 20.9개의 크로스를 시도하며 8.2개나 숫자가 줄었죠. 반면 드리블 돌파 시도는 경기당 5.6개나 늘어났는데 지난 시즌 대비 공격지역 패스 시도가 줄어든 것을 함께 고려하면 전체적인 점유율은 늘어났음에도 팀의 무게중심이 좀 더 뒤로 가면서 전방에서 달려들 공간은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리버풀을 상대하는 팀들의 경기당 태클 시도가 5개 가량 늘어난 것 역시 드리블 돌파에 대해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막아내야 하는 빈도가 늘어났음을 의미하겠죠.

 

허나 점유율 증가가 리버풀의 수비에 기여했는가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경기당 태클 빈도, 가로채기 빈도, 걷어내기 빈도 등이 모두 증가했다는 건 이번 시즌 리버풀이 지난 시즌보다 수비 상황을 좀 더 자주 맞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죠. 리버풀을 상대하는 팀들의 크로스 시도, 드리블 돌파 시도 등이 모두 늘어난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3) 슈팅

마지막으로 득점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슈팅을 보겠습니다. 이번 시즌 로저스 리버풀은 경기당 19.4개의 슈팅을 날려 지난 시즌 대비 1.8개 더 많은 슈팅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중 박스 안 슈팅이 0.7개 늘었고 박스 밖 슈팅은 1.1개 늘어나 로저스가 강조하는 4P 중 침투(Penetration)는 생각만큼 원활하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죠. 상대적으로 리버풀을 상대한 팀들의 슈팅 시도는 지난 시즌 대비 경기당 0.4개 증가하였구요.

 

헌데 이처럼 슈팅 숫자에서 큰 변화가 없음에도 경기당 득점과 실점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지난 시즌 리버풀은 38경기 47득점 40실점으로 경기당 1.24 득점, 경기당 1.05 실점을 기록했는데 이번 시즌 리버풀은 33경기 59득점 40실점으로 경기당 1.79 득점, 경기당 1.21실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실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공중볼 경합 부분입니다. 이번 시즌 리버풀의 롱볼 시도가 지난 시즌 대비 경기당 8개나 줄어들었음에도 공중볼 경합 빈도는 지난 시즌 대비 경기당 3.6회나 늘어났습니다. 이는 볼을 더 많이 가져가는 걸 중시하는 로저스 리버풀을 상대로 리그 내 중하위권 팀들이 내세우는 해법은 더 자주 롱볼을 시도하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이로 인해 리버풀 수비수인 스크르텔(80%-70%)과 아게르(64%-60%)는 지난 시즌 대비 10%와 4% 낮은 공중볼 경합 성공율을 보이고 있기도 하구요. 로저스가 자꾸만 새로운 수비수를 영입하고자 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겠지요.

 

 

3. 골대와 리버풀 - 축구에서 운(Luck)의 역할

 

이번 시즌 리버풀의 득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사실은 경기당 유효슈팅 숫자가 지난 시즌 대비 0.5개만 늘어났음에도 경기당 득점율은 1.24골에서 1.79골로 크게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요? 제가 주목하고 싶은 수치는 리버풀이 기록한 골대에 맞은 슈팅 숫자입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이글루스 세르닌님이 덧글로 K리그에서는 골대에 맞은 슈팅도 유효슈팅으로 기록한다고 남기셨습니다. OPTA에서는 네트 안을 향했지만 수비에 가로막힌 슈팅까지만 유효슈팅으로 분류하고 골대에 맞은 슈팅은 비유효슈팅으로 기록하고 있죠. 골대에 맞은 슈팅은 골키퍼나 수비수를 이미 지나쳤다는 점에서 다른 비유효슈팅에 비해 득점과의 차이가 매우 적은 슈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골대 슈팅을 K리그 처럼 유효슈팅으로 분류하면 어떤 차이가 생길까요? 지난 시즌 리버풀은 총 207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했고 골대 슈팅은 30개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시즌 리버풀은 33라운드 현재 총 197개의 유효슈팅, 14개의 골대 슈팅을 기록하고 있구요. 만약 골대 슈팅을 모두 유효슈팅으로 분류한다면 지난 시즌 리버풀은 경기당 6.24개 유효슈팅, 이번 시즌 리버풀은 경기당 6.39 유효슈팅으로 매우 적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유효슈팅만이 아닙니다. 만약 리버풀이 골대에 맞춘 슈팅들이 모두 득점으로 바뀐 경우를 가정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정한 비교를 위해 지난 세 시즌을 비교해 봤습니다.

먼저 지난 세 시즌 리버풀이 기록한 슈팅당 득점율 추이입니다. 10-11시즌(38R 최종 10.14%)과 12-13시즌(33R 현재 9.23%)이 유사한 수치를 보이는데 반해 11-12시즌(38R 최종 7.05%)만 유난히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담 골대를 맞춘 슈팅들이 모두 득점이 된 경우를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지난 세 시즌동안 리버풀이 기록한 슈팅당 (득점+골대)의 비율은 각각 11.86%, 11.54%, 11.42%로 사실상 차이가 없습니다. 즉 통계적으로 봤을 때 슈팅 9개 당 하나가 (골키퍼와 수비수의 선방에 걸리지 않고) 골대를 포함한 네트 안으로 들어가는데 유독 11-12시즌에만 이 슈팅들이 골대를 강타한 빈도가 높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거죠.

 

영화 "머니볼"에서 오클랜드가 시즌 초 부진을 이어가자 빌리 빈과 함께 구단주 앞에 불려간 피터 브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표본수(sample size)의 문제이지 내 방법론이 틀린 건 아니라 확신한다고. 경기를 계속 소화하다 보면 우리가 예상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코몰리는 리버풀에서 해고된 후 에코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사한 발언을 합니다. "보다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나는 내 판단들에 실수가 있었다 생각지 않는다. 6개월, 8개월 아니 한 시즌의 결과만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건 옳지 않다. 때때로 2~3년을 두고 판단해야 할 일들이 있는 법이다." 코몰리 역시 통계쟁이답게 리버풀의 11-12시즌 실패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표본 하에 불운이 겹쳐 일어난 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발언이었죠.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시즌 리버풀은 코몰리-달글리쉬가 시도한 머니볼 축구의 실패를 뒤로 하고 브랜든 로저스의 패싱 축구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패스와 슈팅에 있어서는 진전이 있었으나 수비와 마무리에 있어서는 다소 문제점을 보이며 챔스권에 도달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성적을 기록 중입니다. 이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챔피언스 리그로 돌아가기 위한 해법은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P.S. 다음 순서로는 아스날/AC밀란/첼시/레알 마드리드/빌바오/AT/도르트문트/로마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을 비교해 보고 싶은 팀이 있다면 언제든지 덧글에 남겨주세요. 제가 OPTA 데이터를 집계할 수 있는 리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라리가/EPL/분데스리가/세리에A/리그앙/러시아프리미어리그/에레디비지에/M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