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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렛퍼드 축구 글창고

리그 앙 구단주 열전(1) - 트루아/랭스/바스티아/로리앙/아작시오

 

유럽 축구를 언급함에 있어 흔히 "빅 파이브" 리그 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리그 규모 등에 있어 덩치가 좀 되는 다섯 개 국가 리그를 일컫는 말이죠.

 

2012년 기준 EPL(매출: €2.5 billion), 분데스 리가(매출: €1,746m), 라 리가(매출: €1,718m), 세리에 A(매출: €1,553m)에 이어 다섯 번째 리그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리그 앙(매출: €1,040m).

 

참고로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매출: €614m), 터키 수퍼 리그(매출: €515m), 잉글랜드 2부 리그인 풋볼 리그 챔피언쉽(매출: €468m),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매출: €431m) 등이 다음 순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여 축구 구단주 열전 시리즈. 오늘부터는 유럽 빅 파이브 리그 앙 축구 클럽을 어떤 구단주들이 소유하고 있나 살펴보겠습니다.


 

2012-13시즌 축구 구단주 열전

 

(1) 웨스트햄/사우스햄튼/레딩/QPR/아스톤 빌라
(2) 위건/스토크/선더랜드/노리치/스완지
(3) WBA/풀럼/리버풀/에버튼/첼시
(4) 뉴카슬/토트넘/아스날/맨유/맨체스터 시티
(5) 삼프도리아/토리노/페스카라/제노아/팔레르모
(6) 칼리아리/시에나/피오렌티나/아탈란타/카타니아
(7) 키에보/볼로냐/파르마/로마/인테르
(8) 나폴리/라치오/우디네세/밀란/유베
(9) 트루아/랭스/바스티아/로리앙/아작시오


 

 

1. 다니엘 마조니 - 팀을 창단한 아버지와 그 아들

 

소유 구단: 트루아
주 업종: 건축 관련 제조업

 

다니엘 마조니는 트루아가 위치한 샹파뉴아르덴 레지옹(이하 주(州)로 통일합니다) 지역에서 건설에 사용되는 콘크리트 제품 제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문의 이름을 따 회사 이름은 "마조니(Masoni)"이며 샹파뉴아르덴 내에서는 나름 업계 리더인 회사이지요.

 

사실 트루아 지역 축구 팬들에게 마조니는 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1979년 트루아 유일의 축구 팀 Troyes Aube Football (TAF)가 파산 후 해체를 겪게 되자 이 지역에는 축구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트루아 지역에 축구 팀을 재건하려는 7년의 노력이 있은 후 앙젤 마조니, 즉 다니엘 마조니의 아버지가 몇몇 지역 유지들과 힘을 합쳐 Association Troyes Aube Champagne (ATAC)를 창단해 프랑스 6부 리그에 진입시켰기 때문입니다.

 

앙젤 마조니 시대에 트루아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95-96 시즌에는 파산 이후 트루아 축구 처음으로 감격의 2부 리그 승격을 달성하는가 하면 98-99시즌에는 21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앙에 승격하기도 했으니까요. 비록 2000년에 슈퍼마켓 체인 기업 ATAC 의 항의로 팀 이름을 ESTAC(Espérance sportive Troyes Aube Champagne)로 개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2004년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DNCG 측의 제재를 받아 강등과 함께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 티에리 고메에게 구단을 팔아야 했으나 트루아 팬이라면 누구나 앙젤 마조니를 좋게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2009년에 팀을 인수한 다니엘 마조니 역시 아버지의 후광을 충분히 활용하며 구단주 지위에 있다 하겠지요.


 

 

2. 장피에흐 카요 - 셔츠 스폰서에서 구단주로

 

소유 구단: 랭스
주 업종: 운송

 

랭스 구단주 장피에흐 카요는 "카요 운송" (Transports CAILLOT) 사장입니다. 요새 운송업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운송, 물류, 포장 등등 관련 분야를 모두 건드리는 종합 물류업체를 지향하고 있지요. 장피에흐 본인이 창업한 회사는 아니고, 아버지 클루디우 카요가 1964년에 세운 트럭 운송회사가 모태였습니다.

 

지금은 마른 데파르트망(레지옹의 하위 단위 이므로 이하 현(縣)으로 통일합니다)에서 종업원 수로 10번 째 가는 규모의 회사로 전체 직원이 1000명을 약간 넘는다고 하더군요.

 

카요와 랭스는 꽤 오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993년부터 카요 운송이 랭스 셔츠 스폰서였기 때문이죠. 그 덕에 장피에흐 카요는 2001년 부터 클럽 부회장직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카요가 랭스 회장직에 오른 건 2004년 부터이고 이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난 시즌 33년 만에 리그 앙 승격을 기록한 건 잘 아실테지요.


 

 

3. 피에흐-마히 조호니미 - 코르시카 지역 사업가 9인회 수장

 

소유 구단: 바스티아
주 업종: 자동차 렌트

 

2011년 5월 18일 바스티아는 한 가지 발표를 합니다. 구단이 더 이상 스포츠 공개 기업(la Société Anonyme à objet sportif, SAOS)이 아니며 프로스포츠 유한 책임 회사(Une Société Anonyme Sportive Professionnelle, SASP)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죠. 클럽이 재정적으로 어려워 프랑스 축구 클럽들의 재정을 감독하는 DNCG 측에 확고한 재무 계획을 제출하지 못하면 하부 리그 강등 혹은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였기에 지역 사업가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팀을 구원하고자 나선 일이었습니다.

 

그 때 주주를 구성하며 바스티아 SASP를 설립한 9명이 있었으니 차례로 쟝-노엘 필리피, 조제프 프헝스시니, 쟝-루이 칼로티, 티에리 바티스텔리, 흐네-폴 살둑시, 알랑 스기, 이브 피아넬리, 마티유 스자히, 피에흐-마히 조호니미 였습니다. 9명 중 조호니미가 회장으로 추대되었지만 9명 이사회 각각은 같은 지분율을 공유한 공동 구단주이지요. 주주이자 바스티아 이사회를 구성하는 9인회 얼굴은 위 사진에서 확인하시면 되겠고, 9인회가 각각 어떤 사업가들인지는 아래 정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조호니미: 자동차 렌트 회사 사장
칼로티: 베이커리/케이터링 서비스 업체 사장
필리피: 자동차 렌트 회사 사장
스자히: 통신사 대리점 사장
피아넬리: 보험 중개사
살둑시: 트레이더
바티스텔리: 트레이더
프헝스시니: 건설사 사장
스기: 빌딩 마감재 회사 사장


 

 

4. 로익 페히 - 헤지 펀드 업계 떠오르는 별, 축구에서도?

 

소유 구단: 로리앙
주 업종: 헤지 펀드 매니저

 

낭시 태생의 로익 페히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파리 비지니스 스쿨 HEC에서 MBA를 마친 후 금융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첫 직장은 프랑스 대형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Société générale)이었고 홍콩 지사에 부임해 아시아 크레딧 시장을 담당했었지요. 5년의 경력을 쌓은 후에는 크레디 아그리꼴(Crédit Agricole) 그룹으로 이직해 자회사인 케이용 인베스먼트 은행에서 이사급 대우를 받으며 자신의 크레딧 투자팀을 이끌었습니다. 로익 페히가 32살이었던 2006년 즈음에는 크레디 아그리꼴 내 로익 페히 팀 인원만 250명이 넘었다고 하니 회사 내에서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는지 알 수 있죠.

 

2007년 말에는 크레디 아그리꼴을 나와 자신의 회사 체나바리(Chenavari)를 런던에 창업합니다. 자신의 전공이었던 크레딧 시장 뿐 아니라 각종 위험 자산을 다루는 헤지펀드였습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페히는 창업 2년 만에 헤지 펀드 업계의 떠오르는 별로 꼽히는가 하면 작년에는 취급 자산 규모가 $2bn에 달하는 등 성공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일찍부터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홍콩 근무 시절에는 현지 2부 리그 팀을 인수하고자 고려했었고, 크레디 아그리꼴로 이직했던 2001년에는 니스, 2008년에는 님을 인수하려고 시도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한 바 있습니다. 한 때 잉글랜드 팀 쉐필드 웬즈데이 인수에 관심을 가졌다 알려 졌으나 인수 가격이 너무 높아 그만둔 일도 있습니다. 로리앙을 인수한 건 2009년 여름이었고 당시 35살이었던 로익 페히는 리그 앙 역사상 가장 젊은 구단주가 되어 지금까지 그 기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5. 알랑 오흐소니 - 코르시카 분리/독립운동가

 

소유 구단: 아작시오
주 업종: 정치가

 

알랑 오흐소니. 20%의 코르시카 섬 사람들에게는 독립투사이자 영웅 이겠으나, 나머지 80%의 코르시카 섬 사람들에게는 과격한 혁명분자 혹은 불한당/테러리스트 일 그 이름.

 

그렇습니다. 알랑 오흐소니는 1975년 코르시카 현지 주민들의 무력항쟁 이후 프랑스 정부를 수 십년 간 괴롭혀 온 코르시카 무장 독립운동 조직의 리더입니다. 75년 알레리아 사건 이후 결성된 코르시카 민족해방전선(FLNC)이 요인 암살/폭탄 테러 등 투쟁노선의 온도차를 둘러싸고 분열을 거듭한 끝에 '자결운동'(MPA, Le Mouvement pour l'autodétermination), 쿤콜타, ANC, '코르시카 바바' 등 4대 조직으로 분화하였는데 알랑 오흐소니는 그 중에서 자결운동 단체 MPA의 리더였죠.

 

전적도 화려합니다. 1975년 알레리아 사건 때 동생 구이 오흐소니와 함께 투쟁 중 경찰 두 명이 죽는데 기여한 바 있고, 1983년에는 자신을 노렸던 암살자에 의해 동생 구이 오흐소니가 암살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코르시카 민족해방전선 분파들과 노선투쟁을 놓고 전쟁을 벌이다 이를 접고 남미 니카라과로 도망치듯 떠난 것이 1996년이었고, 2006년에는 바르셀로나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지요. 죽은 동생을 기리고자 아들 이름 역시 구이 오흐소니라 지었는데 이 젊은 친구도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 최근 코르시카에서 벌어진 몇 건의 테러/암살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고 복역 중이기도 합니다.

 

오흐소니가 코르시카 섬의 수도 아작시오에 위치한 축구 클럽 아작시오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건 2008년이었습니다. 함께 MPA 활동을 했던 정치적 동반자이자 친구 미쉘 모헤티가 기나긴 투병생활 끝에 권총자살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포츠 기자 출신 미쉘 보헤티는 MPA 활동을 통해 코르시카 의회에 진출하는 등 정치 활동을 해왔지만 동시에 아작시오 축구의 대부이기도 했죠. 1992년 팀을 인수해 1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작시오 구단주로 팀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헌신적이던 모헤티가 떠나고 아작시오 팬들은 적이 많아 지금도 종종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인물을, 혹은 그에게 위협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때문에 경찰서를 드나드는 인물을 구단주로 모시게 되었으니 좌불안석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