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구단주는 대체 뭐하는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나 살피는 시리즈입니다.
EPL 다음으로 먼저 생각한 건 라 리가나 분데스 리가 입니다. 허나 두 리그는 축구 클럽이 구단주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 구단의 성격이 여전히 남아 있는 터라 시리즈 취지에 맞지 않지요. 라 리가의 경우 20개 클럽 회장의 절반 정도가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운영진이고 "50+1" 정책을 펴는 분데스 역시 대부분 회장이 CEO 성격이죠.
물론 발렌시아 회장인 마누엘 요렌테/에르꿀레스 지분을 가지고 있는 프란시스코 로이그/비야레알 회장인 페르난도 로이그, 이 셋은 어떤 인연으로 엮여 있는가, 혹은 시민 구단이라는 바이언 뮌헨이지만 지분 18.2%는 아디다스(9.1%)와 아우디(9.1%)가 보유하고 있는 일이라든지 이야기 거리가 없는 건 아니겠죠. 허나 두 리그 모두 선출직 회장이 많은 상황은 구단주 열전이라는 시리즈 주제에 부합하지가 않기에 생략하겠습니다.
하여 오늘 주제는 세리에A 구단주입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지난 시즌 순위 역순으로 해서 어떤 놈들이 축구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2012-13시즌 축구 구단주 열전
(1) 웨스트햄/사우스햄튼/레딩/QPR/아스톤 빌라</a>
(2) 위건/스토크/선더랜드/노리치/스완지</a>
(3) WBA/풀럼/리버풀/에버튼/첼시</a>
(4) 뉴카슬/토트넘/아스날/맨유/맨체스터 시티</a>
(5) 삼프도리아/토리노/페스카라/제노아/팔레르모
1. 리카르도 가로네 - 어린 나이에 가업을 물려받았던 화공학도
소유 구단: 삼프도리아
주 업종: 정유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가업을 물려받아야 했던 에너지 기업 회장. 김승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노아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리카르도 가로네는 1963년 당시 27살 나이에 아버지의 급사로 아버지 회사였던 ERG SpA 를 물려받습니다. 아버지 이름은 에도아르도 가로네, 회사 이름은 에도아르도 가로네 정유(Edoardo Raffinerie Garrone)였으며 63년 당시 연간 정유량이 650만 톤에 달하는 큰 회사였지요.
ERG는 가로네 휘하에서 사업을 더욱더 확장해 나갑니다. 1971년에는 시실리 섬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ISAB 정유 플랜트 단지를 조성했고, 1985년에는 시에나 지방에 산 퀴리코 정유단지를 확장하죠. 가로네는 정유사업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생산한 제품을 유통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1984년에 ELF italiana 인수, 1986년에는 셰브런 이탈리아를 인수하며 디젤, 가솔린, LPG 등의 유통망을 이태리 전역에 갖추게 되었죠. 현재 ERG는 발전, 재생 에너지, 청정 에너지, 정유, 오일 유통 등 일반적인 에너지 기업이 하는 영역은 대부분 거느린 거대 기업입니다. (이태리 내 기름 유통 시장 점유율 12%, 1년 매출 € 6.8 billion)
가로네의 ERG는 1980년대부터 삼프도리아의 스폰서를 맡아 왔습니다. 그러다 2001년에는 아예 삼프도리아를 인수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삼프도리아 셔츠에 ERG 로고가 박혀 왔으니 잘 아실 겁니다. ERG 그룹 경영을 맏아들 에도아르도 가로네에게 넘겼듯이 삼프도리아 부회장직을 아들 에도아르도에게 주며 인수인계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2. 우르바노 카이로 - 베를루스코니 비서 출신 광고쟁이
소유 구단: 토리노
주 업종: 광고/출판
우르바노 카이로는 Fininvest 그룹에서 베를루스코니 비서로 일하며 30대를 보낸 인물입니다. 베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Publitalia '80 SpA 에서 상업부문 이사로 근무했고, 경력을 살려 90년대 초에는 Fininvest 그룹 자회사인 출판사 Arnoldo Mondadori Editore에서 CEO로 일했습니다. 1995년에는 독립을 선언하며 광고회사 Cairo Pubblicità를 창업하였고 1996년에는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하며 Cairo Communication SpA 를 재창업하였지요.
1999년에는 Editorial Giorgio Mondadori SpA를 인수해 출판업으로 분야를 확장했고, 2000년에는 Cairo Communication SpA를 기업공개해 모은 자금으로 신문을 창간하는 등 미디어 산업 분야에서 세를 늘려 나가며 "IL NUOVO BERLUSCONI" 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2011년 기준 Cairo Communication SpA 연매출 € 316 million)
카이로가 토리노를 인수한 건 2005년이고 이런저런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매각할 생각은 없다며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3. 다니엘레 세바스티아니 - 페스카라 지역 사업가들의 집단 경영
소유 구단: 페스카라
주 업종: 금융
돌고래 울미조 아니 페스카라 칼치오는 페스카라 시에 기반을 둔 지역 사업가들이 모여 만든 컨소시엄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클럽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2008년에 파산 선언을 하고 페스카라 시에서 새로운 인수자를 물색했을 때, 페스카라 서포터 연맹인 비안카쭈리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클럽을 소유하게 된 그룹이지요.
강력한 지지
인수 당시 컨소시엄의 주요 얼굴마담은 두 명이었습니다. 페스카라 지역에서 파스타 공장을 하고 있는 주세페 데 체코와 1970년대에 클럽 회장직을 역임했던 아르만도 칼도라의 딸이자 페스카라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는 데보라 칼도라 였지요. 데보라 칼도라와 데 체코 둘은 각각 데보라가 2009-10 시즌, 데 체코가 2010-11 시즌 동안 회장직에서 클럽을 경영하였습니다.
컨소시엄의 일원이면서 클럽 이사 중 하나였던 다니엘레 세바스티아니가 페스카라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된 건 2011년 11월에 있던 페스카라 주주총회에서 였습니다. 당시 클럽이 데 체코 소유의 스포츠 센터를 사들이는데 실패하면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고 이번에는 비안카쭈리 측에서 데 체코 회장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섰지요. 결국 데 체코 회장은 클럽에서 자기 지분을 줄임과 동시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선언하였습니다. 뒤이어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당시 페스카라 이사이자 페스카라 지역 금융가인 세바스티아니가 새로운 CEO 자리에 올라 현재까지 클럽을 이끌고 있습니다.
4. 엔리코 프레찌오시 - 베를루스코니를 흠모한 완구업체 사장
소유 구단: 제노아
주 업종: 완구업
16살에 돈을 벌고 싶다며 가출해 껌공장, 전자공장 등을 전전했고, 가전제품 외판원 생활을 하다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30살에 완구 판매상을 시작했던 엔리코 프레찌오시. 그 때 창업했던 회사가 Giochi Preziosi 였는데 지금은 이태리에서 가장 크고, 유럽에서는 레고 다음으로 큰 완구업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프레찌오시는 가게 벽에 베를루스코니 포스터를 걸어놓고 매일 쳐다보며 꼭 성공하겠다 다짐했다고 말하죠.
사실 성공의 비결이 포스터에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프레찌오시는 80-90년대에 회사를 키울 때 베를루스코니 소유의 메디아셋을 통해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하며 홍보한 덕을 톡톡히 보았으니까요. 그 후 프레찌오시의 완구업체 Giochi Preziosi SpA 의 모기업인 Giochi Preziosi Group 은 아동복, 과자, 코믹스, 백화점 등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상태입니다. (2011년 기준 연매출 € 1000.1 million)
축구와는 꽤 오랜 악연(?)을 가지고 있는 양반입니다. 1994년에 사로노를 인수해 회장직에 있다가 클럽을 파산시켰고, 1997년년에는 코모를 인수해 회장직을 역임하다가 2003년에 제노아를 인수하면서 그만두었습니다. 프레찌오시가 떠나고 얼마 뒤 코모 역시 파산하게 되면서 이태리 검찰로부터 사기죄/이중장부 작성 등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도 하였지요. 제노아에서도 명불허전 승부조작과 범죄조직들과의 연루 등으로 재판정을 들락거린 인물입니다. 제노아 서포터라면 누구나 자기 지역 사업가인 리카르도 가로네가 2002년에 제노아와 삼프도리아 사이에서 제노아를 선택했어야 했다며 아쉬워 하고 있을 겁니다 :-P
5. 마우리치오 잠파리니 - 시칠리아 섬의 유통왕
소유 구단: 팔레르모
주 업종: 유통
잠파리니는 유통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서른 살 때 세운 슈퍼마켓 Mercatone Zeta 를 이태리 전역에 유통망을 가진 마트 사업으로 발전시켰던 인물이고 2001년에는 이 유통망을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 Conforama에 매각해 막대한 돈을 손에 쥔 영감이죠. 이후에도 경제활동을 멈추지 않고 부동산, 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감행했으며 팔레르모 시에 새로운 쇼핑 센터를 짓기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2011년에는 불법으로 건축 허가를 받은 혐의에 대해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캠페인을 벌이며 시실리 섬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 하고 싶어하는 모습입니다.
축구에서는 사실 팔레르모보다 베네치아와의 인연이 훨씬 더 길고 오래되었습니다. 1987년에 세리에 C2에 있던 베네치아를 인수했던 잠파리니는 2002년에 베네치아를 떠나 팔레르모를 인수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베네치아 구단주로 있었으니까요. 베네치아 인수 1년 만에 C1으로 승격시켰고, 3년 뒤에는 세리에B로, 다시 7년 뒤인 97-98 시즌에는 세리에A로 승격시키며 클럽의 영광을 같이 했습니다. 지금은 유벤투스 CEO로 있는 주세페 마로타가 이 때 잠파리니 밑에서 베네치아 단장으로 일하며 승격에 일조했었지요. (참고로 마로타는 그 후 베네치아를 떠나 삼프도리아 가로네 밑에서 일을 하다 유벤투스로 옮겨 가게 됩니다) 이 후 베네치아는 강등, 승격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마침 2002년에 베네치아보다 수익성이 좋아 보이는 팔레르모가 매물로 나오자 잠파리니는 냉큼 인수해서 2년 만에 세리에A로 승격시킨 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팔레르모에서의 행보는 잘 아실테니 생략합니다.
사진출처
forzapesc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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