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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의 거인들

유럽 지역예선 잔혹사 -2


필자: Yan11


* 비운의 영웅, 테리 요라스와 웨일즈 


2000년대 중반, 영국 BBC나 ITV의 축구 중계를 접해본 경험이 있다면  ITV에서 중계했던 유로 2004와 당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진행한 미모의 여성 진행자, 개비 로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본다. 2001년 스코틀랜드 럭비 대표 케니 로건과 결혼한 그녀는 리듬체조 선수 출신으로 명문 더럼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특히 웨일즈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테리 요라스의 딸이다. 


개비 로건 (ITV 중계 캡쳐)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웨일즈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던 요라스는 현역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 커벤트리 시티, 토트넘 핫스퍼 등 명문 클럽에서 활약했다. 1969년 11월 4일, 19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예선 최종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그는 1981년까지 A매치 59경기에 출장했고, 그중 42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달았다. 


요라스는 명성과 달리 선수생활에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소속팀 리즈를 1973년 컵위너스컵과 1975년 챔피언스컵 결승에 올려놓고도 당대의 강자들인 AC 밀란과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해 우승컵을 안지 못했으며, 네 차례의 월드컵에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메이저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영국의 4개 협회 가운데서도 가장 전력이 처지는 것으로 평가되어온 웨일즈는 1958년 월드컵 본선에 유일하게 진출했을 뿐, 1970,1974,1978년 월드컵 예선전에서 모두 조 최하위로 탈락했고, 유럽선수권대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라스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웨일즈는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 터키와 함께 유럽 3조에 속해 있었다. 어려운 대진이었지만 1980년 11월 19일, 카디프에서 가진 홈경기에서 전반 10분 터진 데이빗 가일스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체코슬로바키아를 1-0으로 격파하면서 웨일즈는 본선 진출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어 소련과의 홈경기에서 무승부를 얻어내는 등 승점 관리에 만전을 기한 웨일즈는 최종전을 앞두고 4승 2무 1패, 골득실차 +8로 소련에 이어 단독 2위에 올랐다. 

마지막 8차전 상대는 소련. 그루지야 공화국 트빌리시에서 벌어진 이 원정 경기에서 이길 경우 웨일즈의 본선행은 확정이었고 비기기만 해도 체코-소련의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본선 진출이 가능했는데, 아쉽게도 요라스는 이 경기에 출장치 못했다. 브라이언 플린이 대신 주장 완장을 찬 웨일즈는 8만 관중의 함성 속에 페이스를 잃은 듯, 전반 20분 만에 비탈리 다라셀리야와 올레흐 블로힌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어 후반 유리 가브릴로프에게 추가골마저 허용, 0-3으로 참패하며 자력 본선행의 꿈은 깨어져 버렸다. 

그러나 아직 웨일즈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었다. 소련이 체코를 꺾어줄 경우 조 2위가 가능했던 것. 웨일즈의 바람대로 소련은 전반 14분 만에 블로힌이 선취골을 터뜨리며 앞서나갔지만 20분 후 체코 수비수 로스티스라프 보야첵이 체코의 본선행을 결정짓는 동점골을 잡아내면서, 웨일즈의 본선 진출은 또다시 좌절되었다. 웨일즈는 조 3위에 머물렀지만, 4승 2무 2패의 성적은 조 2위로 본선 티켓을 획득한 4조의 잉글랜드(4승 1무 3패), 6조의 북아일랜드(3승 3무 2패)보다도 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선수로서의 월드컵 꿈을 접고 은퇴를 선언한 요라스는 1988년, 조국 웨일즈 대표팀 감독직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월드컵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재임중 자신의 계보를 잇는 수퍼 스타 라이언 긱스를 18세의 나이에 국제 무대에 데뷔시키기도 한 그는 이안 러쉬, 게리 스피드, 딘 손더스, 네빌 서덜 등 프리미어 리그에서 명성을 떨치던 웨일즈 출신 선수들을 한데 모아 94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겨냥했다. 

요라스에게는 딸 개비 외에 그녀와 네 살 터울인 다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축구에 관심을 보인 다니엘의 재능을 높이 산 요라스는 직접 기술을 지도하며 애착을 보였고, 다니엘을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리즈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에 들어가게 했다. 1992년, 요라스와 함께 뒤뜰에서 축구를 즐기던 다니엘이 갑자기 쓰러졌고, 결국 '비후형심장근육병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이라는 병으로 인해 그는 15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곁을 떠난다. 요라스는 큰 슬픔에 빠졌지만, 아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 대표팀 감독으로의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고 월드컵 예선전 준비에 나서야 했다. 

유럽 4조에 속한 웨일즈의 대진운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험난했다. 전 대회 8강 진출팀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강호 벨기에와 루마니아의 벽을 넘어야 했다. 루마니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1-5로 대패하며 불안하게 출발한 웨일즈는, 그러나 홈경기에서 벨기에를 2-0으로 격파하고 체코와의 2연전도 모두 무승부를 기록해 고비를 넘겼다. 9차전까지 5승 2무 2패, 승점 12를 기록한 웨일즈는 루마니아, 벨기에, 체코에 이어 조 4위였지만 선두 루마니아와의 승점 차는 1점에 불과했다. 

최종전을 앞둔 당시 영국의 4개 협회 모두 본선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4개팀중 늘 최약체로 평가받던 웨일즈의 본선 진출 가능성이 가장 컸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자력 본선 진출이 좌절된 상황이었지만 웨일즈는 루마니아와의 마지막 홈경기를 이기면 무조건 본선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1993년 11월 17일, 카디프 암스 파크에서 4만 홈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라스와 웨일즈의 운명을 결정할 대회전이 시작되었다. 요라스는 백전노장 이안 러쉬, 20세의 신예 라이언 긱스, 딘 손더스를 공격 최전방에 세우고 에릭 영, 앤디 멜빌, 폴 보딘, 데이빗 필립스 등 당시 웨일즈가 동원할 수 있는 최정예 멤버들을 내세워 승리를 겨냥했다. 비기기만 해도 본선행이 결정되는 루마니아도 주장 게오르게 하지를 비롯하여 스트라이커 플로린 라두치오유와 일리에 두미트레스쿠 등 베스트 멤버들을 출전시켰다. 

전반 32분, 하지의 절묘한 골로 루마니아가 앞서나갔지만 사생결단의 각오로 나선 웨일즈는 후반 16분 손더스가 기어이 동점골을 뽑아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웨일즈에게는 이제 한 골이 더 필요했던 상황. 4분 뒤인 후반 20분, 웨일즈는 드디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보딘이 키커로 나선 이 킥만 성공하면 웨일즈는 유일한 본선 무대였던 1958년 스웨덴 대회 이후 36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루마니아 GK 플로린 프루네아는 공에 키스를 한뒤 킥 지점에 놓았고, 왼발잡이 보딘은 이를 애써 무시한 채 골문 왼쪽 상단, 깊숙한 지점을 노렸다. 그러나 보딘이 후일 "왼쪽 상단을 노리고 달려가 있는 힘껏 볼을 찼다"고 회고한 이 킥은 크로스바 상단을 강하게 때리고 나왔고, 4만 웨일즈 관중과 요라스의 한숨이 울려퍼졌다. 웨일즈는 다시 골을 얻기 위해 공세를 가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반전되어, 종료 7분 전 결국 라두치오유에게 결정타를 얻어맞고 1-2로 무릎을 꿇어, 24년에 걸친 요라스의 월드컵 꿈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보딘은 "슛이 2인치만 낮았어도 우리는 이길 수 있었다."라며 이 상황을 아쉬워했지만, 그는 두고두고 웨일즈 축구팬들의 뇌리에 페널티킥 실축자로 남아 있다. 아마도 이 때 웨일즈가 본선에 진출했다면 웨일즈 축구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요라스는 1995년부터 2년간 중동의 레바논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여기에서도 월드컵 꿈은 이룰 수 없었고, 2002년 셰필드 웬즈데이 감독을 끝으로 축구계를 떠났다. 

참고로 덧붙이면, 근년의 요라스는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2004년, 음주운전 혐의로 적발되어 6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그는 다시 인사사고를 내, 30개월간의 면허 정지와 함께 철창신세를 질 위기에 직면했지만 그의 변호인은 그가 수감될 경우 자살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이를 막아냈다. 요라스 개인적으로는 그해 4월 노모가 87세를 일기로 타개하고, 부인 크리스틴과도 헤어지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그는 2004년, 자신의 현역 시절 별명(Hard Man)을 따 'Hard Man, Hard Knocks'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고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등용한 웨일즈 출신의 수퍼 스타 라이언 긱스가 이 책의 서문을 집필해 대선배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요라스는 2008-09 시즌 7부 리그의 마게이트를 잠시 맡은 것을 끝으로 현재까지 지도자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 본문은 필자가 2007년 11월 30일 축구공화국 재직 시절 쓴 글을 보완 편집한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