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홍차도둑
지인이 무료표를 가지고 있어서 갈까 했지만 결국 나가지 못한 하루였다.
비온다는게 그렇고 오늘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지금도 계속 하는 중이라서...
결국 경기는 TV로 시청했다.
전반에서 후반 이후까지만 본다면 또 뭐 수비축구의 어쩌고라고 기사가 쓰여질 뻔 했으나...
후반 막판에는 양 팀이 일단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좋았다.
물론 단적으로만 보게 될 경우라면 또 무재배 어쩌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서울과 제주 선수들이 보여준 경기 운영과 그들의 움직임은 존경받아야 한다. 단순히 무승부라고 폄훼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비오는 날의 경기 운영은 크게 '롱패스에 의한 공격'이 대명사이다.
이런 대명사는 다시 말하자면 '그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한데. 양팀이 선택한 것은 그간의 축구이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빠른 패스전진에 의한 공략'을 양팀은 공통적으로 선택했다.
[ 빠른 스피드 패스 위주의 경기전략을 선택한 양팀 감독.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경기장의 현대화, 그리고 선수들의 기술 향상과 체력 향상에 있다.
사진은 http://osen.mt.co.kr/article/G1109386461 기사에서 가져옴]
양팀 다 '수중전에서의 정석'이라 할 수 잇는 포스트플레이를 할수 있음에도 이 부분을 택한 것은 상대의 수비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의 끈끈한 수비능력을 본다면 데얀은 쉽게 고립될 가능성이 컸다. 제주의 수비 중심들이 빠졌다 하더라도 제주의 수비는 특정 선수에 크게 의존하는 수비는 아니다. 더구나 단순한 전법으로 나갈 경우는 아무리 제주가 주력 수비수들이 빠졌다 해도 서울은 고전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서울은 경기 흐름을 빨리 가져가서 제주의 수비와 미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부수는 쪽을 선택했다.
제주의 경우 공중전으로 가면 호벨치와 서동현의 포스트를 기대해 볼 수 있지만 서울의 수비는 아디가 버티고 있다. 공중전으로 간다면 아무리 더블 포스트라 해도 아디의 공중장악 능력을 생각한다면 아디에게 막힐 가능성은 너무 컸다. 거기에 산토스의 기동력을 한 방향으로 한정시키는 것 보다는 산토스의 능력을 철저하게 이용하기 위해선 비오는 날의 잔디에서의 빠른 공 스피드를 이용하는 길을 택했다.
왜 '롱패스의 공격'이 아닌 이런 방법을 택할수 있었을까?
그것은 '경기장의 진화' 때문이다. 이전에는 경기장이 비가 오면 쉽게 물웅덩이가 생기고 잔디를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해 경기장의 곳곳이 선수들에게는 '지뢰밭'이었다. 심지어 K리그 초창기에는 수중전에서 골키퍼까지 완전히 제치고 날린 슛이 물웅덩이에 멈춰져 골로 연결되지 못한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때문에 개장한 경기장들은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호우특보 이상급의 날씨가 아닌 이상 배수가 빨리 되서 이전의 그런 말들은 이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양팀의 그런 힘겨루기는 경기 내내 계속되었다.
이 부분을 '힘겨루기'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비올때의 절대명제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수중전은 심한 체력소모를 가져온다' 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붙는 여러 수식어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느팀이, 그리고 누가 힘이 떨어져서 밀리는가? 그 순간 때문에 실수를 하는가?
이 경기도 결국은 그랬다.
서울의 첫 골은 그러한 것에 충실했다. 제주는 버텨왔지만 데얀이 빠지고 새로 선수가 들어온 부분에 대해 수비의 체크가 미흡했는가? 그것은 아니었다. 다만 체력이 떨어져서 점핑에서 밀려버린 거였다. 그래서 들어간 첫골.
서울의 수비력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4분의 추가시간이 있어도 쉽지 않을거라는 것을 경기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막판 제주의 움직임에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계속적인 공격시도는 급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4분이라는 시간의 압박에서도 같은 흐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집념은 서울의 빈 틈을 만들어 내고 만다.
[제주의 수장 박경훈 감독. 그가 제주 부임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끝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상대를 공략하게 만든다는 거다. '방울뱀 축구'라고 자신은 표현하지만 프로선수로서 자신들을 찾아온 관중들에게 마지막까지 뭔가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은 어쩌면 프로스포츠의 원초적인 모습이 아닐까?
촬영 aisanote 2012/3/28 수원과의 홈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서 ]
슈팅이 터졌을 때 서울의 골키퍼 김용대 선수가 세이빙 하려는 순간 페널티 에리어 안에 있던 제주 선수들과 서울 선수들의 숫자 차이. 그것이 결과를 만들어냈다.
바로 마지막까지 공을 따라갔던 제주 선수들의 움직임이 바로 동점골로 이어졌다. 제주의 공격수 두명이 완전 노마크로 있었던 것. 바로 그 끈질김의 차이였다.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서울의 팬들은 아쉬움을 곱씹었을 것이고.
특히 막판 제주의 공격과 그 짧은 한 순간을 만들어 낸 제주 선수들의 집단적인 움직임. 그리고 그 순간 텅 비어 있었던 서울의 그 헛점을 '어떡하던 헤집고 만들어 낸' 모습은 제주 팬들이라면 순간적인 카타르시스에 전율했을거다.
그리고 '다 잡은 승리'를 놓친 FC 서울의 팬들은 승리와 좌절의 순간을 겪으면서 하나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우리가 '프로' 스포츠를 보면서 얻고 싶은 것은 일종의 '드라마'와 '카타르시스'다.
WWE라는 프로레슬링이 아예 대놓고 '엔터테이먼트'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이제 프로레스링이 '쇼'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알고 사람들은 프로레슬링 경기를 본다. 왜냐 그 엔터테이먼트의 장에서 보여지는 여러 '쇼'를 보면서 드라마와 카타르시스를 즐기기 위해 그 쇼장에 가는 것이다.
[ 1:1로끝난 뒤의 산토스를 껴안는 제주 선수들, 축구장은 이런 드라마를 보러 오는 거다. 리얼리티 쇼. 그것이 바로 프로스포츠다.
사진은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4211643462233&ext=na 에서 가져옴 ]
하지만 다른 프로스포츠의 경기장을 가는 것은 '쇼'가 아니라 'Real' 그리고 그 'Real'을 만드는 드라마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 바로 프로스포츠의 경기장이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직업적인 선수들이 벌이는 기량의 향연을 보면서 그리고 그 순간에 일어나는 여러 드라마들 그리고 그것에 몰입해 그 극의 '배우'로서 관중 자신도 참여하게 되는 그러한 '리얼리티 쇼'를 만들기 위해 관중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그것이 바로 프로스포츠를 우리가 보러 가는 이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하나의 참견없이 생생한 시시각각 일어나는 '리얼 타임'의 긴장과 짜릿함, 좌절과 환희를 맛보러 가는 '극'을 보러 가는 '극장'이 바로 지금의 프로스포츠 경기장이다.
오늘 경기는 '25분간의 드라마'를 위하여 나머지 70여분을 버렸다 해도 그 15분동안의 드라마로 양팀 팬들과 관전자들을 충분히 사로잡았다. 그 순간의 짜릿함.
스포츠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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