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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he Game

가슴에 스틸야드를 새긴 남자. 김기동

글쓴이 : 홍차도둑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오후 여섯시경.
K리그 역사상 필드 플레이어로는 '최고령'기록을 가지고 있던 '그라운드의 철인(鐵人)' 김기동 선수의 은퇴식이 열렸다.

그럴 내가 필드에서 본 것만 해도 어언 17년이 넘었다.
포항 데뷔 시절에는 보지 못했다. 그는 철저한 무명이었으니까. 그가 부천으로 왔고 나도 부천(당시는 유공)쪽에 관련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그였다.

그의 은퇴식.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에서 일도 땡깡부리면서 튀었다.
가는데 늦을거 같아서 버스타고 가지 않고 KTX 타고 평소의 배나 되는 교통비를 지불하면서 달렸다.
스틸야드에서 그의 은퇴식을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스틸야드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오늘의 화제가 되었던 그 유니폼. 서포터석으로 오면서 양복 와이셔츠의 단추를 푸르는 순간 설마 했는데 역시였다. 나는 김기동에게 하나의 이름을 더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인테르 밀란의 이반 사모라노가 은퇴할 때 이후 이러한 감동은 오랫만이었다.
문신을 새기는 것은 한국의 문화에서는 '안좋은 문화'다.
그렇기에 문신을 새기는 것은 김기동에게 생각도 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유니폼을 양복 안에 입는 세레모니는 앞으로도 한국의 프로스포츠에 정착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기동은 그 시초를 열었다]


[하프타임때 자신의 이전의 활약상(포항에서만의 활약이지만)이 담긴 영상을 보며 가슴이 북받쳐오른 김기동.
 본인도 이야기했지만, 은퇴 선언 이후 은퇴식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감정은 정리되었을거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저 영상을 보는 순간 가슴이 북받쳐 올랐단다.
실제로 김기동 선수는 이날 울었다.
남자의 눈물. 그리고 그는 남자는 어떻게 말하는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아들과 같이 그라운드의 은퇴식에 선 김기동. 양쪽의 전광판에 보이는 자신의 경기 영상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 무엇인지 하프타임때 물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 경기에서 뛰던 모든 순간들이 계속 떠올랐다."

그는 대표팀과 인연이 별로 없었다.
박종환 감독 시절 이스라엘 원정때에 경기에 뛰지 못하고 엔트리에 들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1997년 일본과의 경기에서 뛴 적이 있다. 그게 그의 A매치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프로 경기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현재까지 필드 플레이어로 그를 앞선 선수는 없다.
500경기.
그를 뛰어넘는 철인이 나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돌 때 서포터석 근처에 오자 그는 양복 와이셔츠의 옷깃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것은 포항의 빨강-검정의 가로줄무늬 유니폼이었다]


[처음엔 그냥 유니폼인줄 알았다. 하지만 가슴에 있는 글자 '감사합니다'...등에는 '사랑합니다' 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이날 김기동은 등과 가슴으로 관중들에게 말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라운드에 있었기에 팬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무엇인지 알기에 이 문구를 택했을 것이다.]


[서포터의 환호에 가슴 뭉클했을 김기동.
그가 받는 그라운드에서 유니폼을 입고 받는 마지막 환호이리라.

김기동은 원래 이 유니폼을 입고 은퇴식에 나서려고 했단다.
하프라인에서부터 이 유니폼을 입고 싶었지만 공식적인 것이고 해서 대신에 공식적인 부분에선 양복을 입었다고 했다. 슈퍼맨처럼 와이셔츠 옷깃을 풀어제낄때 나타나는 유니폼.
김기동은 연출이라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의 마음은 더욱 전달되었다.
그의 가슴에 있는 저 말은 그가 말하고 싶은 말 그 한마디였였다.]


[그리고 그 유니폼을 서포터에게 던져주었다.
어느분이 가져갔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사인 받아서 방안에 걸어두실 것이다.
분명 한 영웅의 기념물이니까. 클릭해서 보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다.
김기동이 왜 철인이었는가는 저 몸을 보면 알수 있다.
나이들었지만 탄탄한 저 몸. 자기 몸 관리가 충실했다는 것 이니겠는가.]


[여기에 올린 사진을 제대로 보시려면 클릭해서 원본으로 보시기 바란다.
그는 유니폼을 서포터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서포터는 그들의 점퍼를 선물로 주었다.
사진에서는 없지만 그는 그 옷을 입고 가슴의 패치를 두들기며 서포터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김기동은 이렇게 말했다.

"응원하는 분들과는 가슴으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영원히 그것을 기억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진실한 뜻을 전하는데에 때로는 말이 필요없을 때가 있다.
가슴과 가슴. 마음과 마음.
그것만큼 사람들 가슴에 깊게 남겨지는 것이 있을까.
적어도 김기동이라는 선수는 포항과 부천의 팬들 가슴에 남을 것이다]


[김기동은 포항의 김기동이기도 하지만 부천의 김기동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후반의 목동경기장을 아로새긴 니폼니쉬 감독의 '니포축구'의 든든한 뒷바라지를 했던 그였고 2000년 이후부터는 부천의 미드필드의 핵심이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부천의 팬들도 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순간 부천의 6번 유니폼을 보는 것에서 내 맘이 울컥했다.
그때를 기억하는 팬들이 지금 인터넷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그때의 니포축구를 구현하던 사람중 현재 그라운드에 남은 것은 공교롭게도 이날 상대였던 부산의 '김한윤' 선수겸 코치 뿐이다.
이날 김한윤은 한골을 넣으며 부산의 2:2 무승부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 니포축구는 슬슬 그때를 기억하는 팬들의 가슴속에만 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 이 사진에 찍힌 여자분이 '피버 피치'의 이 사진을 보시면 바로 연락주시길 바란다.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을 크게 인화해 드리겠다. 그것은 당연하다. 꼭 연락주시기 바란다]


[포항의 어린이들에게 기억으로 남은 그.
이 어린이는 30년뒤 40년뒤 스틸야드로 와서 이 추억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리그의 전통과 전설은 이렇게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그 리그가 '전통있는 리그'가 되는 것이다.
아직 K리그는 이제야 그 기반을 닦은 30년을 맞게 되었다.
다음 30년은 이제 전통이 완성되는 리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설중 한명은 오늘 은퇴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떠나는 포항의 영웅을 위해 꽃다발이나 선물을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김기동 선수는 이날 은퇴식을 마치고 코치 수업을 받기 위해 그 일정에 맞추느라 얼마 뒤에 네덜란드로 간다고 한다. 그의 지도자 수업이 충실하길 바라고 몇년 뒤 그라운드에서 지도자로 보기를 희망한다.

이 뒤에 이야기를 나눠본 김기동 선수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사진을 한장 찍을까 했는데 거절당했다. 수줍음이 있던 모습은 옛날 그대로였다.]


"오늘 은퇴한다고 하니까...이런저런 생각이 다 났어요. 정말 부천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는데...
난 기동씨가 은퇴한다고 하니까 깜짝 놀랐어요, 더 뛰었음 했지...근데 은퇴한다고 하니까...'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득 들더라구. 옛날 생각이 절로 났는데..."
라고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서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앞으로 나갈 길이 많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전에도 도전해 왔고 그리고 지금의 위치에 있다. 앞으로도 할 도전도 그는 맞서 나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K리그는 위대한 전설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오늘 스틸야드를 가슴에 새겼고 가슴과 가슴의 대화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의 유니폼에 있던 말을 다시금 그에게 우리는 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은퇴의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기동. 현장 직접 녹취라 하울링이 큽니다. 조만간 하울링 조정 가능한 마이크나 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하여 현장감을 더 생생히 전달하겠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사진과 동영상은 FeverPitch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허락없이 사진의 무단 사용은 엄금합니다.
포항 서포터, 김기동선수의 팬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락없이 무단 사용시에는 사후 법적 책임을 지게 됨을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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