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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렛퍼드 축구 글창고

수비와 성적 - EPL 팀 실점과 유럽 대회의 관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아스날마저 패퇴하면서 EPL은 결국 챔피언스 리그 8강에 단 한팀도 진출시키지 못했습니다. 잉글랜드 언론의 호들갑은 당연합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EPL은 챔스 4강에 세 팀을 세 시즌 연속 진출시키던 힘을 과시했으니까요. 챔피언스 리그 8강에 EPL팀이 전멸한 건 95-96시즌 이후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구요.

 

허나 이는 쉬이 예상되던 일이기도 합니다. 시즌 초에 제가 잠깐 언급했듯이 현재 EPL은 상위팀들의 수비력이 예전만 못하고 이 상태로는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로 축구팀 수비력과 토너먼트 성적이 연관되어 있는가? 축구팀의 수비력과 유럽 대회 성적 간에 통계적으로 얼마나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나는가를 따져 보고자 합니다.


 

 

1. 팀실점과 UEFA Coefficient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유럽 대회 성적과 팀 수비력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까 하는 겁니다. 처음 생각난 건 UEFA에서 집계하고 있는 리그 점수입니다. 챔피언스 리그와 유로파 리그에 진출한 각 리그 팀들의 성적을 점수로 환산해 각국 리그 순위를 내고 있죠.

 

그렇다면 팀 수비력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요? 역시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유럽 대회에 진출한 팀들이 해당 시즌에 자국 리그에서 기록한 경기당 실점률을 그 팀의 수비력이라 보는거죠. 34~38경기 정도이니 최소한의 표본수도 확보되구요.

 

각각을 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유럽 대회가 현재와 같은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된 1992-93시즌 이후 EPL의 시즌별 UEFA Coefficient 입니다,

 

다음은 1992-93시즌 이후 유럽 대회에 진출한 EPL팀들의 해당 시즌 팀실점을 표로 정리했습니다. 해당 기간 중 02-03시즌 입스위치, 04-05시즌 밀월, 11-12시즌 버밍엄이 2부리그 소속으로 유럽 대회에 진출했습니다만 별다른 도리가 없어 2부리그에서 기록한 실점을 그대로 집계했습니다.

 

자, 그럼 1992년부터 2012년까지 EPL 유럽 점수와 유럽 대회 진출 팀들이 자국 리그에서 기록한 경기당 실점률을 살펴 봅시다.

 

대략적인 패턴은 팀실점이 높을수록 유럽 대회 점수가 낮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를 결정계수인 R 제곱값으로 표현하면 0.0964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결정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내죠.

 

헌데 EPL의 유럽 점수 추이를 보면 1998-99시즌을 전후로 획득하는 점수대가 확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2-93시즌부터 98-99시즌까지는 잘해야 7~8점대 점수를 획득했고 못하면 3~4점대 UEFA 점수를 획득했죠. 99-00시즌부터 현재까지는 잘하면 17~18점대, 부진해도 10~11점대 UEFA 점수를 회득하고 있구요.

 

실제로 92-93 시즌부터 98-99시즌까지는 EPL에서 한 팀 내지 두 팀만 챔스에 진출하던 시기이고, 99-00시즌 부터는 세 팀, 02-03시즌부터는 네 팀이 챔스에 진출하는 시기이니 이 시기를 전후로 EPL이 유럽에서 가지는 자체 경쟁력이 차이난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그럼 각각의 시기를 나누어 살펴보면 어떨까요? 먼저 92-93시즌부터 98-99시즌까지입니다.

유럽 대회 진출팀의 리그 실점률과 UEFA 점수 사이의 결정계수가 0.7669로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담 이후 시기인 99-00시즌부터 11-12시즌까지는 어떨까요?

결정계수가 0.2472로 92~99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팀실점과 챔스 임팩트

 

여기서 글을 마치기에는 뭔가 허전하더군요. 보통 특정 리그가 유럽에서 가지는 아우라를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챔피언스 리그 성적 아닌가요? 그리고 보통 표현할 때도 챔스 우승팀이 어디인가, 챔스 4강에 몇 팀이 진출했나, 혹은 서두에 적은 것처럼 챔스 8강 진출현황은 어떤가로 서술하죠.

 

잉글랜드 언론인 텔레그라프만 봐도 아래와 같은 차트를 통해 유럽에서 EPL이 가지는 경쟁력을 표현하고 있죠.

 

그래서 유로파 리그 성적이 반영되는 UEFA Coefficient 대신 다른 기준을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름하여 챔스 임팩트 점수!

 

사람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두는 챔스 우승을 5점, 챔스 준우승을 4점, 4강 진출은 3점, 8강 진출은 2점으로 계산합니다. 한 리그가 최대로 얻을 수 있는 점수는 7.25점입니다. {챔스 우승 한 팀(5점)+챔스 준우승 한 팀(4점)+4강 진출 네 팀(12점)+8강 진출 네 팀(8점)}/4

 

이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죠.

 

집계는 챔피언스 리그에 8강 토너먼트가 도입된 94-95시즌 부터 했고, EPL은 96-97시즌부터 챔스 8강에 진출했습니다. 그럼 이들의 상관관계를 볼까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EPL의 챔스 임팩트 점수와 팀 실점율의 결정계수는 0.2688 입니다. 약한 상관관계라 할 수 있죠. 기간을 좀 더 압축해 봅시다.

맨유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98-99시즌부터 비로소 EPL이 유럽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다 가정하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를 차트로 작성했습니다. 보시다시피 결정계수가 0.6016 으로 꽤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흔히 EPL의 빅4 시대로 알려진, 맨유/첼시/리버풀/아스날이 매 시즌 챔스에 진출하던 2004년부터 2010년까지를 차트로 작성했습니다. 놀랍게도 결정계수가 자그만치 0.9808 입니다! 이 시기 EPL의 챔스 임팩트와 리그 내 팀실점은 상관관계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는 매 시즌 같은 팀들이 챔스에 진출하다 보니 유럽진출팀이 달라지면서 발생하는 변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리그 실점이 곧 유럽 대회 성적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3. 12-13시즌 평가

 

진행 중인 이번 시즌에 위와 같은 통계적 관찰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챔스 진출팀들인 맨체스터 시티, 맨유, 아스날, 첼시는 각각 28경기를 소화했고 팀 실점은 24, 31, 32, 30 입니다. 경기당 팀실점은 1.045 이죠. 이를 위에서 살펴본 1998-2012년 회귀방정식(결정계수 0.6016)에 적용하면 기대할 수 있는 챔스 임팩트 점수는 3.06점입니다. 1996~2012년 회귀방정식(결정계수 0.2688)을 적용해도 기대할 수 있는 챔스 임팩트 점수는 3.54점 수준에 불과합니다.

 

챔스 8강 3팀, 4강 1팀이 진출했던 00-01 시즌 챔스 임팩트 점수가 3점이었으니 대략 그 정도 성적을 기대할 수 있었던 시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실제로는 챔스 8강에 전멸하며 챔스 임팩트는 0점 획득에 그쳤습니다.

 

그러니 EPL의 12-13시즌 챔스 성적은 통계적으로 못할 거라고 기대된 예상치보다도 더 못한 시즌 되겠습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