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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 구단주 열전③ 아르세날/드니프로/메탈리스트/디나모/샤흐타르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구단주 마지막 편입니다.


 

 

12. 바딤 라비노비치 - 이랬다가 저랬다가

 

소유 구단: 아르세날 키예프
주 업종: 미디어

 

"범죄자에서 사업가로" 바딤 라비노비치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렇지 않을까요. 하르키우 대학을 다니던 21살 때 이미 "부적절한 행위" 때문에 퇴학을 당하며 규칙/규범과는 담쌓은 인물이었던 라비노비치. 20대 시절에만 두 번을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되었고, 31살이었던 1984년에는 하르키우 법정에서 14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생활을 했던 라비노비치였습니다. 감옥에서 7년째 되던 해에 KGB에 협조하는 대가로 풀려난 라비노비치는 그해 독립을 맞이한 우크라이나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전개합니다. 그가 했던 사업은 주로 서방세계의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독점 공급하고,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을 해외에 수출하는 일이었죠. 우크라이나 초대 대통령이었던 레오니드 크라우추크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업을 전개하던 라비노비치는 1999년 우크라이나 보안국으로부터 자국의 경제와 안보에 심각한 손해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해외로 추방되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라비노비치가 천연자원 수출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국방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라비노비치가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레오니드 쿠츠마 상대였던 올렉산드르 카첸코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등등 말이 많았습니다. 암튼 이 때 교훈을 제대로 얻었는지 이후로 라비노비치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밑보이는 일 없이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Media International Group (MIG)을 만들어 신문, 잡지, 라디오, TV,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요.

 

2006년 키예프 시장에 당선된 레오니드 초르노비츠키가 이끌던 아르세날 키예프를 라비노비치가 인수한 건 2007년의 일이었습니다. 헌데 이후 라비노비치는 아르세날을 진득하게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2009년 초에는 구단을 초르노비츠키 시장에게 재매각했다가, 그해 여름에 변덕을 부리며 클럽을 다시 사들이기도 했죠. 올해도 갑자기 클럽의 모든 일에서 손을 떼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라비노비치가 또다시 아르세날을 떠났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10월에 언론 앞에 나서 "자기는 클럽을 버리지 않았다, 잠시 공백기를 가졌을 뿐이다"라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13. 이호르 콜로미스키 - 컴퓨터 수입상에서 올리가르히

 

소유 구단: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 업종: 금융/석유

 

우크라이나 올르가르히. 포브스 지 기준 $3 Billion 재산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세 번째 가는 부자인 이호르 콜로미스키.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태생으로 대학에서 야금학을 전공한 콜로미스키는 친구이자 동업자인 겐나디 보골루보프와 함께 "Sentosa"라는 회사를 차린 후 동남아에서 컴퓨터와 사무용품을 수입하는 일을 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기에 우크라이나 법이 바뀌면서 개인이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된 흐름을 탔던 선구자 중 하나였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1992년에 콜로미스키는 그야말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보골루보프와 함께 차린 Sentosa 를 통해 "PrivatBank"를 공동창업하는데 참여한 일이었습니다. Sentosa 외 두 개 회사가 더 참여해 만들어진 PrivatBank 는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이자,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많은 카드를 발급한 금융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덕분에 콜로미스키와 보골루보프는 각각 (포브스 기준) 우크라이나 3위와 4위 부자가 되었죠. 일각에서는 컴퓨터나 수입해 팔던 콜로미스키가 PrivatBank 와 함께 급격히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지사였다가 후에 우크라이나 총리가 되는 파벨 라자렌코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콜로미스키 재산 목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PrivatBank 인 건 사실이나 은행만이 유일한 자산은 아닙니다. 이외에도 백 개가 넘는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콜로미스키인데, 대표적인 것만 꼽아보면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지역에 위치한 철강기업들, 광산기업, 정유기업, 우크라이나 석유 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UKRNAFTA", 화학공업, 식음료회사, 발전회사, 언론사 등이 있습니다. 콜로미스키는 PrivatBank 와 Ukrnafta 둘을 LSE에 기업공개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니 근시일 내에 재산 규모가 더 늘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콜로미스키가 소유하고 있는 드니프로는 또다른 올리가르히 아흐메토프가 소유하고 있는 샤흐타르와 함께 우크라이나 축구를 좌지우지하는 양대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살펴 보았지만 볼린 루츠크 공동 구단주 페트로비치가 UKRNAFTA 이사로 일하고 있고, 크리바스의 경우 서포터들이 구단의 진정한 주인이 누군인가 묻고 있는 상황이죠. 여기에 더해 콜로미스키와 함께 우크라이나 유대계 단체를 이끌고 있는 아르세날 키예프 구단주 라비노비치 역시 콜로미스키의 영향력 하에 놓인 인물이라는 설이 있고, 수도 키예프의 자존심 디나모 키예프 역시 콜로미스키의 "PrivatBank"로부터 스폰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디나모 키예프 구단주 수르키스는 올해 봄에 가진 인터뷰에서 "콜로미스키가 볼린, 크리브바스, 아스세날, 디나모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나 이들 클럽을 소유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이런 의심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축구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올 가을 아르세날 키예프가 드니프로에게 승리를 거두자, 두 클럽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콜로미스키가 단단히 열받아서 바딤 라디노비치를 아르세날 키예프 회장 자리에서 짤라버리고 다른 이를 운영진에 앉히려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도 했죠. 물론 라디노비치는 지금도 여전히 아르세날 키예프 구단주 자리에 있지만요.


 

 

14.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브스키 - 하르키우의 왕

 

소유 구단: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주 업종: 금융/자산투자

 

마리우폴에서 의사 부부의 자녀로 태어나 하르키우에서 자란 야로슬라브스키는 하르키우 주립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전공을 살려 하르키우 주립 식량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죠. 야로슬라브스키가가 지금과 같은 거물 사업가로 성장한 건 역시 결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첫번째 부인 이리나는 하르키우 주지자 알렉산더 마셀스키의 딸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독립 후 야로슬라브스키가 하르키우 지방에서 사업가의 길로 뛰어들어 크게 성공한 배경에 장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죠. 이런저런 사업을 전개하던 야로슬라브스키는 1998년에 "UkrSibbank" 대주주이자 회장이 됩니다. 네, 콜로미스키의 PrivatBank 와 함께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 중 하나로 손꼽히는 UkrSibbank 말입니다. 야로슬라브스키의 두 번째 결혼 역시 대단했죠. 상대가 우크라이나 2대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 처남의 딸이었으니까요. (미스 하르키우 출신 지금 와이프는 세 번째 부인입니다)

 

2007년에 야로슬라브스키는 자신의 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할 지주회사 DCH (Development Construction Holding) 그룹을 만듭니다. DCH를 통해 각종 자산에 투자하고 건설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요, 유로 2012 개최를 위해 메탈리스트 스타디움을 재건축하고, 하르키우 국제공항을 개보수, 하리키우 팰리스라는 5성급 호텔을 신축한 일 등이 모두 DCH를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UkrSibbank 지분도 DCH를 통해 보유하고 있다가 2010년에 모두 매각하며 차액을 남겼기도 했구요.

좌: 88년생 부인 마리나, 중: 야로슬라브스키, 우: 로만 아브라모비치

 

유로 2012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야로슬라브스키가 보여준 모습만 봐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메탈리스트 역시 야로슬라브스키가 구단주가 된 2007년 이후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로만이 종종 메탈리스트 스타디움을 직접 방문해 VIP 박스석에서 야로슬라브스키와 함께 메탈리스트 경기를 관전하는 장면을 보면 둘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어요.


 

 

15. 수르키스 형제 - 지는 해

 

소유 구단: 디나모 키예프
주 업종: 금융

 

수르키스 형제는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와 무역에 종사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디나모 키예프 구단주 자리에 있는 동생 이호르 수르키스는 키예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각종 기업 경영진으로 일했죠.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에는 금융 펀드, 보험 회사 등을 몇 개 소유하고 있습니다. 형 흐리호리 수르키스는 키예프 공대에서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각종 기업 수석엔지니어나 경영진으로 일했고,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에는 에너지/제조 기업인 Slavutich 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시절 소련 축구를 지배했던 모스크바 클럽들에 대항해 우크라이나의 자존심을 세웠던 디나모 키에프. 허나 독립 이후 곧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던 클럽은 1993년 흐리호리 수르키스에게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흐리호리는 1996년부터는 우크라이나 프로축구연맹 회장, 2000년부터는 우크라이나 축구협회 회장직을 역임하며 우크라이나 축구행정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합니다. 물론 흐리호리가 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었기에 2002년에 동생 이호르에게 디나모 키예프 소유권을 넘기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기부터 2000년대 전반기는 수르키스 형제가 가장 잘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둘은 정치적으로 당시 여당 연합 세력 중 하나였던 SDPU 정당을 지지했고, 특히 흐리호리의 경우 축구에서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SDPU 간판으로 활동했으니까요. (우크라이나 최고의원 1998~2006) 그러나 2006년 선거 패배, 2007년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그의 오른팔 네스토르 슈프리치 가 SDPU를 탈당해 당시 부상하던 지역당에 입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SDPU는 정치적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맙니다. 정치권 최상부와의 연이 끊어져서 일까요? 이후로 수르키스 형제의 재산도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2008년 당시 포브스 우크라이나에서 형제의 재산을 대략 $1 billion에 가깝다 평가했으나 2012년 판이 되면 둘의 재산은 각각 $137m, 둘이 합쳐도 300m이 안된다 추산하고 있지요. 2009년에 수르키스가 소유하고 있던 방송사 TET가 드니프로 올리가르히 콜로미스키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일만 봐도 하락세는 확연해 보입니다.

 

재미난 건 디나모 키예프가 구단주들과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다는 겁니다. 한 때 리그 9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크라이나 축구를 완전히 지배했던 디나모의 패권(92-93시즌부터 00-01시즌까지 우승)은 2000년 대 중반 이후 아흐메토프 샤흐타르의 상승과 함께 조금씩 힘을 바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2005년 이후를 기준으로 보면 8년 동안 샤흐타르가 6회 우승, 디나모가 2회 우승이니 이전만큼의 지배력은 사라졌지요. 쉐브첸코가 고국으로 돌아와도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 하락세에도 불구 축협 회장으로 흐리호리 수르키스가 우크라이나 축구에 많은 공을 남긴 것 또한 사실입니다. 2004년에 UEFA 이사 중 하나로 선출된 후로 각종 노력 끝에 2007년 우크라이나가 유로 2012 공동개최국으로 선정되는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올해 여름 유로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였던 지난 9월에는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이 더 이상 현장 일선에서 일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 축협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명예 회장으로 추대되었어요.


 

 

16. 리나트 아흐메토프 - 우크라이나의 실질적인 지배자?

 

소유 구단: 샤흐타르 도네츠크
주 업종: 자원/금융

 

모 우크라이나 잡지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라는 설문을 진행했을 때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 대통령을 제치고 1위에 선정된 인물. 포브스 기준 $16 billion 재산으로 우크라이나 1위, 전 세계 39위에 부자에 랭크된 인물.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지배하는 인물이라 일컬어지는 46살 리나트 아흐메토프는 대체 누구일까요? 과거 이력에 대한 논쟁이 워낙 많은 인물이라 두 가지 버전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1) 정사
도네츠크 지역 광부였던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아흐메토프는 일찍부터 장사에 뜻을 두었습니다. 특히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부터는 광부의 아들답게 석탄이나 코크스 해탄 류를 사고팔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죠.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갑자기 도입된 자본주의 우크라이나에서 리스크 높은 사업에 투자하는 성향을 가졌던 아흐메토프는 큰 이문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자신의 자산운용사 SCM (System Capital Management)를 창업합니다. 나날히 성장을 거듭한 SCM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업체는 100개 이상에 철강, 광산, 에너지, 금융, 보험, 통신, 미디어, 부동산 등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죠. 가장 큰 자회사는 광산/철강을 주로 취급하는 Metinvest Holding (2011 연매출 $14.19 billion, SCM 전체 연매출은 $19.54 billion)인데, 1편에 소개했던 마리우폴 일리치 철강 이 여기 자회사 중 하나입니다.

 

우크라이나 2대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의 사위인 빅토르 핀추크(포브스 기준 $4.2 billion 재산으로 아흐메토프에 이어 우크라이나 2위 부자)와 2004년에 함께 동업을 했을 정도로 정치권과 친밀했던 아흐메토프는 2006년 이후 지역당 소속으로 우크라이나 최고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2010년 대선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주요 후원자였던 아흐메토프는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더더욱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죠.

 

(2) 야사
광부였던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아흐메토프는 일찍부터 도네츠크 지역 마피아의 일원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공산국가 우크라이나에서 불법으로 의류를 사고파는 사업을 전개했던 범죄조직 두목 아흐트 브라긴 아래서 오른팔이자 행동대장으로 성장한 아흐메토프. 브라긴 일파는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도네츠크 주정부 장관 말리세프의 비호 아래 각종 자산들을 사유화하기 시작했는데 이 자산 중에는 도네츠크 고장의 자랑 축구팀 샤흐타르 역시 속해 있었죠. 아흐메토프가 일반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재미납니다. 1995년 10월 샤흐타르 경기장을 찾아 축구를 보던 중 브라긴이 갑자기 터진 폭탄 테러로 6명의 보디가드와 함께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각종 이권 다툼에 관여했던 브라긴이기에 그의 반대파 중 하나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일이었죠. 직후 조직 내 넘버 투였던 아흐메토프는 브라긴의 모든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게 됩니다.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암살의 배후로 아흐메토프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물려받은 조직의 유산을 바탕으로 각종 사업을 전개하고 SCM 을 창업하는 일 등은 정사의 과정과 유사합니다.

 

위키리크스 야사에 따르면 아흐메토프는 사실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은인이나 마찬가지 인물입니다. 1997년에 레오니드 쿠치마 당시 대통령에게 지역 운송회사 경영자로 일하고 있던 야누코비치를 추천해 도네츠크 주지사로 임명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이후 아흐메토프는 자신이 정치에 입문시킨 야누코비치를 계속 후원해 왔고, 야누코비치는 도네츠크 주지사에서 우크라이나 총리를 거쳐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야사 끝)

 

아흐메토프 아래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디나모 키예프를 제치고 우크라이나 축구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에 디나모 키예프 흐리호리 수르키스가 우크라이나 축협 회장이 되자, 공석이 된 프로축구연맹 회장 자리에 당시 샤흐타르 부회장이었던 라빌 사피울린을 앉혀 협회vs연맹의 긴장 관계를 조성하기도 했던 아흐메토프. 콜로미스키-수르키스 연합과 아흐메토프의 기싸움이기도 했던 이 대립 관계는 콜로미스키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 몇 팀(볼린, 크리바스, 아르세날 등)을 제외한 나머지 리그 팀들이 아흐메토프의 편에 섰기에 숫적으로는 균형이 맞지 않는 싸움이었죠.

 

아흐메토프는 2009년에는 $400m을 들여 새로 지은 5만 석 규모 돈바스 아레나를 개장하여 팀의 새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돈바스 아레나는 동유럽 최초로 지어진 UEFA 5성급 경기장 이어요.

 

 

 

가. 정치, 정치, 정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에 외국인 구단주는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특징은 구단주 중에 전현직 정치인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의회 의원이 현직으로 5명, 전직 의원까지 포함하면 최고의회 출신은 9명으로 늘어납니다. 여기에 지역의회 현직이 2명, 전직이 한 명입니다. 지지하는 정당은 현재 집권 여당인 지역당이 7명으로 가장 많네요.

 

 

 

나. 재산 순위

 

구단주 재산에 있어서는 샤흐타르 도네츠크 구단주 아흐메토프가 $16 billion으로 독보적입니다. 이 외에 콜로미스키와 지바고가 억만장자에 꼽히고 피르타쉬와 야로슬라브스키도 우크라이나 10대 부자에 꼽히는 인물이지요. 구단주 재산 순위에 없는 유게니 겔러, 바실 스딸야르, 알렉산더 리브시츠, 바딤 라비노비치의 공통점은? 유게니 겔러의 조르야는 아흐메토프로부터, 볼린/크리브바스/아르세날은 콜로미스키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린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