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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셋풋볼

한국의 축구관중 그리고 야구.

글쓴이: 바셋

 

8회전을 소화한 K리그가 지금까지 동원한 관중은 총 469,543명. 올해부터는 믿으라고 하니 아마 정확한 숫자겠지요. 경기당 평균을 내면 7,453명으로 비슷한 수의 경기를 치른 이웃 중국(19,935명), 일본(16,314명)에 비함 비루한 흥행이며, 심지어 호주(8,655명) 보다도 못하다니 좀 쪽팔리긴 헌데 얼추 잉글랜드 3부리그와 비슷하다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상황도 아닙니다.

 

이웃 나라들에 비해 K리그가 보여주는 특이점이라면 극소수의 몇 개 팀이 사실상 흥행을 책임지고 있다는 부분으로 중국, 일본 공히 평균 만명 이하의 홈관중을 모으는 팀이 3개 밖에 없는데 반하여 우리는 정반대로 단 세 개의 팀만이 만명 이상을 동원한다는 문제라면 큰 문제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평균 꼴랑 5천을 모으는 팀이 리그의 절반을 넘는 9개 구단이나 됩니다.

사실 이런 현상이 위험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셀틱과 레인저스의 스코틀랜드, 페냐롤과 나치오날의 우루과이, 벤피카와 포르투의 포르투갈, 하이둑과 디나모의 크로아티아 등등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더비구조를 바탕으로 양강 두 팀이 전체 흥행의 50%를 해 처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 위 나라들은 문제의 두 팀이 말 그대로 ‘양강’ 슈퍼팀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서울과 수원이 원정에서도 구름 관중을 동원하는 전국구 인기팀으로서 돌아가며 우승을 차지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불편한 진실이면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로 위와 같이 슈퍼팀들이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나라의 전체 흥행이 좋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관중이 많다는 독일, 잉글랜드의 경우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맨유, 아스날이 모아들이는 관중은 전체 관중의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양강체제의 상징 스페인에서 조차 레알과 바르샤가 약 20% 정도만 책임지고 있지요.

 

또 하나 꼽을 수 있는 K리그의 특징은 현격하게 낮은 객석 점유율입니다. 관중 동원만 놓고 보면 그리 꿀리지 않는데 어째 관중석은 항상 텅텅 비어있습니다. 아셨을랑가 모르겠습니다만 K리그 팀 홈구장 평균 좌석수는 EPL 보다도 높은 37,700석입니다. 세계 톱클래스지요. 근데 거기다 평균 7천5백을 모으고 있으니 객석 점유율 20%.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앞으로 북한 평양 류경 호텔 놀려먹기를 삼갑시다. 

 

한편 한국처럼 동일 시즌, 심지어 비슷한 경기 시간대에 막강한 두 개 실외 구기 종목의 프로리그가 공존하는 나라도 흔치 않습니다. 한때 축구를 상대하기 위해 야구장을 무료 개방하던 황홀한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 판세는 쨉이 되지 않는다고 봐야겠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축구팬들 중엔 아예 이 나라에서 야구가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참고로 저는 거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항상 가지고 있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과연 야구가 없어지면 축구 관중수가 늘어날까요?

 

때는 2012년 그러니까 올해. 4월8일 목동을 제외한 전구장을 매진시키며 프로야구가 화려하게 개막되기 전까지 프로축구는 경기당 평균 8,984명을 동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야구 개막이후 이 숫자는 거의 반 토막이 납니다. 경기당 평균 4,790명.

 

물론 이렇게 큰 차이가 나타난 데는 개막경기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합니다. K리그 개막전엔 평균 10,181명이 운집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평균 3,040명이란 처참한 결과를 낸 주중 경기 역시 야구개막 이전에 벌어졌었음을 감안하면 확실히 관중수가 줄긴 줄었습니다. 울산과 성남의 주중 경기엔 1,107명이 들어왔지요. 선수 식구들도 외면했나 봅니다.

 

평균 2만2천에 육박하는 흥행력을 자랑하던 에푸씨 서울의 상암이 두산과 기아가 잠실에서 격돌하는 날 만명을 간신히 넘깁니다. 상대가 상주였다는 핑계가 가능하나 이전 상대들 중에도 도끼니 개끼니인 전남, 대전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2만 가뿐했지요.

 

반면 서울의 흥행 라이벌 수원에선 야구를 하건 말건 오히려 관중이 늘어난 모습이 보입니다. 상대가 겨우 대구였는데 포항 때보다 3천이 더 들어옵니다. 암만 정몽준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확실히 현대가 우리나라 축구에 긍정적 영향을 참 많이 끼쳤습니다. 수원을 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놀랍게도 구도 부산에선 관중수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만 들여다 봄 상황이 껄적지근합니다. 이전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2천9백을 동원한 부산이 야구가 시작되자 무려 서울과의 경기에서 달랑 3천1백을 들입니다. 심지어 그 시간 자이언츠는 부산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구도 인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야구 개막 후 이전 평균에 1/3 정도의 관중이 들어옵니다(개막 수원전을 제외해도 평균보다 적은 관중) 총선날 대구에서도 라이온스가 홈을 비웠으나 축구 관중은 반토막 납니다. 앞으론 축구장에서 야구중계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원래 소수 정예 죽돌이 팬들로 구성된 대전은 한화가 두루미 잡으러  멀리 인천으로 가준 덕까지 입어 관중수의 변화가 없었고, 야구팀을 보유하지 않은 도시들에서 역시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늘어난 곳이 많더군요.

 

그렇다면 결론은 실제 야구가 축구 관중을 뺐어먹고 있다는 얘기가 될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표본수가 적으니 자료적 가치는 없다고 봐야겠지만 미비하나마 애들 데리고 축구장 피크닉 가는 대신 야구 시청을 선택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고 봅니다. 저희 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었죠.... 

 

서양인들이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를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야구’라고 답해줬습니다. 정답이 핸드볼, 배드민턴 혹은 탁구가 아님에 당황하곤 했지요. 02년 이후론 당연히 축구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딱 한번 ‘야구’란 대답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독일인이고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그 아줌마는 한국 치안을 미군 유지한다고 알고있던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