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홍차도둑


FA컵의 한 경기가 끝났습니다.
포항과 제주라는 두 팀이 맞붙은 경기는 난타전 끝에 포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제주는 초반 기세를 높였지만 포항의 빠른 반격과 후반의 뒷심에 물리고 말았습니다.

경기 전체는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90분이 이렇게 빨리가고 긴장을 풀 수 없었으니까요. 후반 중반 이후 승부의 추는 사실상 기울어졌지만 제주도 이기기 위한 선수들의 투지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경기 전날 제주는 맑았지만...경기 당일 새벽에 비가 내렸습니다. 정오쯤부터 비는 멈추는 듯 했지만 경기 시작 직전부터 그라운드를 적셨습니다. 요즘처럼 3일 간격으로 경기를 치뤄야 하는 때에 이 비는 선수들에게 체력전을 요구할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 체력전에서 앞서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돼 마라냥이 서귀포 경기장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서로간의 탐색전을 얼마 거치지도 않았는데 골. 공식 기록은 모르겠으나 2분 정도 즈음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라냥의 골 순간]




[벤치의 제주 선수, 스텝들과 하이파이브하는 마라냥]




이 초반 기습성공은 그 순간 제주팬들의 가슴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을 것입니다. 황선홍 감독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너무 일찍 골을 허용했다. 만회골이 빨리 나와서 다행이었다. 만회골이 늦었다면 경기는 제주의 의도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후 포항의 공격은 거셌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반격에서 얼마 안있어 고무열 선수가 만회골을 넣었습니다.



[고무열 선수의 동점골 헤딩 순간, 이게 바로 들어가면서 승부의 저울추를 돌려놨습니다.]




그때까지 포항의 공격은 파상적이었습니다. 제주는 필드를 완전 장악당햇을 정도였습니다.
일방적인 원사이드 게임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경기 MVP는 박성호 선수가 받았지만 이 골이 승부의 1차 하일라이트였습니다.
이 골이 아니었으면 포항은 1-0으로 경기가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파상공세로 인해 오버페이스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반 막판에 제주는 포항의 수비를 무너뜨리며 여러차례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나 다름없는 순간에서 서동현 선수의 슈팅은 골대를 빗나갔습니다.
이 장면이 이날 승부의 2차 분수령이었습니다.



[서동현 선수의 1:1 찬스나 다름없는 상황. 아쉽게도 슈팅은 골이 되지 않았습니다.]





양팀의 전반 10분 이후는 그야말로 일진일퇴였습니다.
대체적으로 포항의 공세였지만, 제주도 페드로를 비롯한 선수들의 역습은 훌륭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포항도 수비를 등한시 할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공격 최 전방의 박성호 선수는 고립에 가까와졌지만 박성호 선수는 계속 제주의 수비와 부대껴 주었고 이것은 제주에 계속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 방법의 차이는 결국 후반에 빛을 발하게 됩니다.



[제주는 비오는 날 높은 타점의 박성호를 막기 위해 마다스치와 오반석 둘이 동시 또는 계속해서 박성호를 마크했습니다. 분명 박성호는 제주에 위협적이었습니다]




이대로 후반에 들어가면서 맨 처음 생각되는 것은 포항의 오버페이스였습니다.
전반 말미의 주도권은 제주가 잡았습니다. 이때 제주의 공세는 무서웠고 포항은 이것을 막기 위해 거친 수비가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특히 페드로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미들에서부터 받아서 돌파를 시도하는 등, 최근의 부진은 어디갔느냐는 듯한 대활약이었습니다. 몸상태는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만큼 제주의 기대는 부풀어오르고 있는 것이 경기장을 덮은 느낌이었습니다.

후반 선취골이 들어가면 잘못하면 이대로 끝날수 있다는 느낌을 양팀은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승부를 가르는 선취골'은 포항이 가져갔습니다.

전반과는 달리 후반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노병준의 슈팅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 상황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만약 포항처럼 휘슬 10분 안에 만회골을 넣는다면 전반전과 똑같아집니다.
그것을 제주-포항의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느꼈을 겁니다.

제주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페드로는 화려한 개인기를 보이며 공을 잡으면 포항을 유린하려 들었고 마라냥은 그 틈을 타서 침투했습니다. 그러면 그 뒤로 다른 제주의 선수들이 들어오는 공세는 바로 동점골을 만들었습니다.

마라냥이 페널티 에리어로 들어오는 순간 얻은 반칙으로 페드로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기의 분위기는 제주가 잡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포항의 반격은 포항의 '자신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어진 박성호의 리드골은 경기를 다시 포항으로 가져왔습니다.

제주와 다른 '톱'의 포인트는 경기를 끌어가는 부분이 다릅니다. 전반 내내 제주 수비와 부대껴주던 박성호의 공격포인트는 제주 수비를 움츠려들게 했습니다. 그 결과는 수비에 미들이 더 가담해야 했고, 그 때문에 정작 공세에 나설 때 숫자가 늘 부족했습니다. 페드로와 마라냥은 여러차례 개인기로 돌파하려 했지만 숫적 우위를 확보한 포항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페드로에게 집중된 포항 수비는 마라냥에게 또 기회를 내 주고 맙니다. 페드로-마라냥의 이러한 플레이는 정말 위협적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이 이날 경기의 분수령이었습니다.

마라냥이 페드로에게 집중된 포항 수비의 틈을 타 페널티 에리어로 침투했고 바로 패스가 이어졌습니다. 포항 골키퍼 신화용 선수는 1:1 찬스에서 각을 줄이기 위해 튀어나왔고 마라냥은 신화용 골키퍼 앞에서 방향 전환하는 순간 넘어졌습니다. 굴러가는 공을 포항 수비수가 걷어내어 동점의 기회를 막았습니다.

앞서와는 달리 페널티킥은 아니었습니다. 이 장면이 이날 승부의 마지막 분수령이었습니다.
제주 입장에서는 너무 아쉬운 기회였고 포항 입장에서는 한숨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제주와 포항의 승부가 갈린 순간이 되었습니다.



[신화용 선수와 마라냥 선수의 '결정적 순간' ]




[앞서와는 달리 페널티킥은 선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포항은 노병준 선수를 빼고 조찬호를 기용하며 리듬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체력적으로 강한 선수를 투입해서 넘어온 경기 주도권을 놓치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제주는 교체타이밍을 좀 더 일찍 가져가서 판을 뒤흔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경기가 난타전으로 계속 가고 있었고 제주도 포항의 골문을 두들기는 시간이 계속되었기에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과론일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아쉬웠습니다.
교체해서 들어간 조찬호 선수는 결국 후반 34분에 사실상 승부를 매조지하는 골을 넣었기 때문에 이 교체는 더욱 빛났습니다.



[조찬호의 골 장면. 조찬호 선수는 사진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슛을 하는 순간 골을 확신할 정도로...저 순간부터 골 세레모니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약 10여분, 두골이라는 차이는 사실상 뒤집기 어려웠지만 제주 선수들은 계속해서 포항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공중볼 공격으로 인해 포항은 박성호 선수도 수비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제주 선수들과의 충돌 때문에 교체되었습니다.

이날 MVP로 선정된 박성호 선수는 '결승골'을 기록했기 때문에 MVP로 선정된 것은 아닙니다. 박성호 선수는 결승골 외에도 많은 활약을 해 주었습니다. 공격에서는 계속해서 제주의 수비진들과 부대끼면서 제주의 수비를 묶어놓았습니다. 마다스치와 오반석 선수가 박성호를 막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또는 합세해서 막아야 했고 이는 다른 수비수들이 공격지원을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날 포항은 미드필드를 장악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포항의 승리에 공헌도가 컸습니다.




[제주의 수비를 괴롭힌 박성호 선수는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며 승리에 이바지했습니다.]




그래서 홍정호 선수의 분데스리가 진출이 제주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것입니다. 이날 '홍정호가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경기의 축이 바뀔 수 있을 정도의 가정입니다.
특히 제주 입장에서는 미드필드에서 1명 또는 2명까지의 지원효과가 있는 홍정호입니다.
이날 미드필드 주도권을 포항이 오랜 시간 가져간 것을 보았을 때, 공격작업이 포항이 원활했음을 생각한다면 홍정호의 부재는 너무나 컸습니다.
그래도 선수의 성장을 위해 분데스리가로 보낸 제주팀과 박경훈 감독의 결단엔 경의를 표합니다.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이날 종횡무진 활약한 페드로 선수는 그라운드에 주저앉으며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경기 종료 뒤 페드로 선수는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경기장은 선수들의 '전투'로 인해 저렇게 엉망이 될 정도로 양팀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Editing by : Muller 님 ]




제주와 포항의 차이는 컸습니다.
포항은 박성호 선수가 계속 제주 수비를 괴롭히는 '톱' 역할을 수행해 주었습니다.
이로인한 제주 수비의 부담은 포항이 미들을 장악하는데 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반면 비슷한 역할을 해 줘야 할 제주의 서동현 선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방에서 많이 움직여 주었지만 박성호 선수와는 다른 움직임이었습니다. 약간 처진 상태에서 올라가고 했기 때문에 포항 수비에게는 약간이나마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이 차이는 컸습니다.
더구나 전반전의 그 찬스를 놓친건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골을 성공시켰다면 포항은 서동현 선수에게 수비가 붙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페드로, 마라냥의 활동폭이 커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톱'이란 골을 못넣더라도 계속해서 수비를 괴롭힘으로서 우리편 선수들의 활동폭을 넓혀주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제로톱'이라는 전술은 '현시대 최강'으로 불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애용하고, 스페인 대표팀에서 애용하기 때문에 '현재의 대세'로 불립니다.
그러나 어떤 전술이건 지향점은 '상대를 괴롭히고', '그로 인해 생긴 틈을 통해', '득점해서 이긴다' 는 3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춰야 합니다. '톱'은 그런 역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제로톱'의 경우는 그 역할을 '특정 선수'에게 한정짓지 않고 필요한 선수가 필요한 때에 가서 그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아예 톱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축구의 현실은 '톱'이 없이 경기를 한다는 것은 '지지 않겠다'는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긴다'는 것과 '지지 않겠다'는 것은 최종목표가 다릅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동기유도가 되는 것이 다릅니다. 제주나 포항 둘 다 자기들의 전력을 다 해서 상대를 꺼꾸러트리려는 목표는 같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자원의 이점을 철저히 이용한 것은 포항이었습니다.



[바다를 건너 포항팀을 응원하기 위해 온 서포터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포항 선수단.]




제주 선수들은 서포터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도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이번 시즌의 마지막 동기부여가 사실상 끝난 것입니다. 스플릿에서도 강등위험은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FA컵 우승과 아챔 진출이라는 동기가 될 수 있었던 포항과의 일전을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홈에서 이런 패배를 당했다는 것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경기 흐름도 결코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경기 과정이 좋았어도 결국 축구는 골로 말합니다.
마무리를 할 때 마무리 하지 못하면 점수는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찬스를 놓친 팀은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아쉬움이 가득한 제주 선수들, 하지만 그들은 다음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여정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박경훈 감독의 경기후 인터뷰는 "축구는 오늘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였습니다.]





양팀의 이날 경기는 명승부에 들어갈 만 합니다. 사실 그동안 제주와 포항의 경기는 흥미로운 경기가 많았습니다. 그 이전의 부천, 더 이전의 유공시절부터 말입니다. 비슷한 전술로 만날 때에도 흥미있는 경기를 보여주었고, 반대의 전술로 맞부딛쳐도 그야말로 '전형'을 보여준 경기를 보여주었던 양 팀입니다.

그래서 이번 FA컵 중에서 제가 '어느 경기를 직관할까?' 라는 부분에서 주저없이 이 경기를 택해 제주도로 날라가서 직접 관전하였습니다. (두 경기 다 직관은 힘들었습니다)
그 선택에 후회없을 정도로 양팀은 훌륭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습니다.

양팀 모두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준 경기였습니다. 6골이나 터졌다는 '단순한 난타전'이 아니라 양팀의 운영은 우리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었습니다.
'톱은 왜 필요한가?'
'톱을 내주고 하는 경기는 왜 위험부담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경기를 다시한번 보신다면 그 부분을 중점으로 보고 본다면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는 경기로 추천합니다.

FA컵의 4강전 한 경기와 결승전도 명승부를 기대해 봅니다.

[이 글에 쓰인 사진은 '홍차도둑'이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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