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vs스페인 이라는 두 거인의 경기가 끝났다.
비록 1:1 이었지만 전날 B조에서 보여준 것과는 달리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90분 내내 축구팬들을 화면에서 떨어지지 못하게끔 한 양팀이 보여준 전술적인 화려함은 경기 전에는 '감독들의 수싸움' 경기 중에는 '기본형의 변형'을 결정하는 '그라운드의 지휘자'들의 기량을 마음껏 감상하게 해 준 '클래식에 등록할만한 경기' 라 정의하겠다.
이 경기만으로도 도대체 글을 몇개를 쓸 수 있을까?
부폰과 카시야스가 보여준 골키퍼의 대결, 피를로와 이니에스타의 '다른 타입의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들' 그리고 몇년전부터 이야기가 되어 온 '가짜 공격수' 등등등등...
그러나 이번엔 이탈리아의 수비전술을 보도록 하자.
이탈리아의 이번 수비는 단순히 3백이니 5백이니 하는 '단순 백'의 모습으로 보면 곤란하다.
방송 캡쳐 화면등으로 이 부분을 감상-분석해 보자.
이 때문에 글 쓰는 것이 하루도 더 지난 시점에서 마무리되었지만 거장의 경기를 다시 생각해 보기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방송캡쳐를 통해 살펴보자, 이것만보면 분명 5백이 맞다. 그런데 이 부분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자.
그리고 이 장면에서 하나의 특징이라면 이탈리아 선수들은 무려 9명이다. 스페인 선수는 7명, 때문에 스페인은 더 빠른 패스와 움직임이 필요하고 이탈리아는 잉여 선수 2명이 어떻게 움직일까? 이것이 전술의 핵심이 된다]
[파브레가스가 부스케스에게 공을 받고 돌진한다. 그 순간 약간 전진해 있던 4번 선수가 중앙커버를 들어가고 중앙을 맡았던 3번이 공을 자르기 위해 나온다. 2번도 중앙 커버로 나간다. 5번은 계속 측면 방비. 이런 식의 돌진 순간 1명을 제외하곤 자기편 안에 압박망을 형성하고 한명이 잡으러 나가는 식이다]
[스페인이 측면으로 공격방향을 돌렸을 때에도 같은 개념이다. 저지역할을 맡은 사람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저지를 시도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로 인해 생긴 라인의 빈 자리를 다른 선수가 끼어들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잘 봐야 할 것은 4번 선수. 화면안에는 현재 이탈리아 선수 10명이 모두 모여있다. 4번 선수는 잉여자원같아 보이지만 반대편으로 크로스가 넘어가게 되면 1차적인 저지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잉여자원이 잉여자원이 아닌 상황이다. 물론 스페인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미드필더들과 앞으로 튀어나오는 수비수에게 그대로 공을 뺏기게 된다. 이렇게 튀어나가고 그 뒤를 메꿔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 장면에서도 이니에스타는 저 저지하는 선수를 뚫고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 크로스를 올렸지만 이탈리아 수비들이 이미 커버가 들어와 있어 스페인 선수들에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만큼 이탈리아 선수들의 커버가 빠르고 완벽했다. 가데나차오의 한명 잡으러 가고 또 커버하고 하는 식의 무서움은 계속적인 커버로 인해 이 수비를 헤집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거다. 거기다 끊기면 바로 역습의 시작이다. 이 수비를 뚫기 위해 많은 선수들이 공격진영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적은 숫자의 이탈리아 공격수들만 가지고도 역습이 가능해진다. 이게 이탈리아의 결정력이다.]
[전형적인 4백의 모습, 여기 어디서 3백이나 5백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상황도 보면 가운데의 스페인 선수를 막기 위해 3명의 선수가 에워쌌다. 이 상황이면 6백이 아니라 4백+2 또는 6백으로까지 늘어난다. 이게 가데나치오의 무서운 점이다. 상황에 따라 자기가 알아서 변화하는 밸런스...무려 40년전에 나온 전술임에도 현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전술이 가데나치오다.]
[가데나치오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살펴보자. 처음에는 5백처럼 보인다]
[5백중 한명이 이탈하는 순간. 다음 화면에서는 화살표처럼 선수가 크로스해서 빈 자리를 메꿔야 한다. 그러면서 위의 4명은 선수들을 다 살피고 있다. 공의 움직임과 함께...]
[이니에스타가 중앙으로 바로 패스하자 8번 선수가 시야를 그쪽으로 주는 바람에 자기가 커버들어가야 할 위치를 놓쳤다. 만약 앞서 사진에서 표현한 * 로 이탈리아 8번 선수가 전술대로 '공간커버'로 들어갔으면 이니에스타에게 열린 공간이 생기지 않았다. 여기서 보듯이 가데나차오는 선수들이 자기가 할 일을 한번 안하면 위기상황이 되는 위험한 전술이기도 하다.]
이런것이 가데나치오의 유연성이다.
이런 모습을 무려 40년 전에 완성했다는 것.
계속해서 달라지는 축구의 전술개념 속에서도 생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가데나치오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즈음 만들어 진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초창기 가데나치오는 전술 분류상 '가데나치오1'로 부르고 이러한 2명의 동등한 후방 수비수들의 조율과 상대 선수를 잡으러 나가고 그 빈자리를 커버하는 식으로의 3명의 수비수와 다른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가데나치오2'라는 전술은 1970년대 초반서부터 이탈리아 리그 안에서 '가데나치오'를 파훼, 발전시키면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금자탑이 1982 월드컵의 우승 되겠다.
이때 이탈리아는 가데나치오2를 완벽히 쌈싸먹으며 당시 마라도나가 가세한 아르헨티나와 '드림 팀'을 만든 브라질이라는 '월드컵 역사상 최강의 조'를 뚫고 올라왔다.
거기에 4강과 결승도 완벽히 마무리 지은 고전이 바로 이 전술이다.
그 무렵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 브라질도 필드에서 고전에 고전을 거듭한 그런 것이기도 했다.
파고들 공간을 웬만해선 내주지 않고 계속 공을 가진 사람을 잡으러 오고 패스 돌려도 막혀있는 그야말로 '벽'을 만들어 놓는데...상대들은 환장할 지경이었던거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3백, 5백이 아니라 중심의 2백과 상대를 잡으로 가는 1백. 그리고 나머지들이 공간 커버를 위해 들어가는 움직임.
이건 단순한 몇백 수비가 아니라 가데나치오2 그것이었던거다.
스페인이 들고 나온 21세기의 화두인 '제로 톱', '가짜 9번'의 파상공세에서도 막아내고 또 반격한 것이다. 단순히 양팀의 화려함 뿐이 아니라 이런 고도의 수싸움이 경기 내에 존재하고 있었던거다.
후반에 왜 토레스를 기용했는지는 마지막 사진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이니에스타도 가능하긴 하지만 저렇게 뒷공간을 공략해 나가는데에 토레스라는 옵션을 사용하면 더 효과적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거다.
그 결과가 후반 막판의 연속해서 토레스에게 온 기회였다. 델 보스케 감독의 교체는 나쁘지 않았다.
가데나차오2의 약점을 정확히 간파한 거였다.
이런 가데나차오의 유연함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탈리아만의 여러 독특한 포지션, 그리고 감히 누구나 따라하지 못하는 그런 것.
말로 설명은 하지만 그걸 실제로 구현을 하기는 이탈리아 말고는 못하는 그들만의 DNA에 들어있는 것 같은 전술.
그러기에 이탈리아 축구에는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마력이 있는 그런 것이겠다.
Text by 홍차도둑
사진은 KBS 방송 중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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